한국은행이 어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연 1.50%)를 또 동결했다. 9개월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급속도로 커졌다”는 말로 금리 결정의 고충을 토로했다.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안팎의 상황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악화일로인 각종 경제지표들은 금리 인상을 점점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움츠러든 소비와 투자 심리 등 국내 여건만 보면 더욱 그렇다. ‘경제는 심리’인데 기업과 소비자 모두 경제 기대심리부터 무너지는 판이다. 한은의 8월 기업 경기실사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가 나란히 17~18개월 만에 최저인 데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내수 부진, 인건비 부담에 짓눌린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체감경기가 특히 나쁘다.

설상가상으로 성장의 한 축인 설비투자가 5개월 연속 줄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의 최장 기간 감소 행진이다. 건설투자도 뒷걸음질하고 있다. 경기선행·동행지수가 동반 하락해 경기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부쩍 늘고 있다. 경기 위축, 일자리 부진, 소득분배 악화 등을 감안할 때 “연내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몇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예상대로 9월에 올리면 이미 역전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0.75%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은 낮다고 해도 파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들의 잇단 통화 위기가 더해져 해외 리스크는 더 커졌다. 미·중 무역전쟁에다 중국의 기업부채 경고등까지 켜졌다. 대외 요인에만 한정하면 한은이 진작에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는 ‘실기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메우기 위해 재정 투입을 늘리면서 부동산까지 자극하고 있지만, 실물경제 부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런 진퇴양난이 통화정책의 무력화로 이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신흥국 연쇄 위기에서 보듯, 경제의 면역성이 떨어지면 위기 전염에 예외가 없다. 더 큰 충격에 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