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법 위에 있는 靑 국민청원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위협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법부인 대법원에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 결과를 전달하면서다. 정 판사는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뇌물공여 등 주요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 정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해당 청원은 26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답변에서 “청와대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은 없다”고 했지만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어 해당 청원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내용만 전달했다는 게 청와대 주장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헌법 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외부 권력이나 여론에 의해 법관 자리가 위태롭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

설령 정 판사가 파면이 불가피할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법관 파면은 국회 권한이다. 청와대가 법원행정처에 의견을 전달한 것은 결국 인사상 불이익을 주라는 무언의 압박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법관들이 사법독립에 대한 침해라며 반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논란을 막기 위해 청와대의 국민청원 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답변할 수 없는 사안은 청원을 받지 않거나 청원을 처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청원을 유도하면 된다. 미국 백악관은 2014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관련 청원에 “연방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며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근본적으로는 청와대 청원을 실명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원법 5조4항은 ‘청원인의 성명·주소 등이 불분명하거나 청원 내용이 불명확한 때’ 청원을 수리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청원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청와대 국민청원만 이 같은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문제다. 국민청원이 본래 취지에 맞게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