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해외부실, 대우건설만의 문제일까
대우건설 매각이 불발됐다. 연이어 터져 나온 해외 부실이 발목을 잡았다. 모로코 사피에 짓는 복합 화력발전소 현장에서 3000억원 손실이 드러난 탓이다. 호반건설은 지난 8일 “해외사업의 우발 손실 등을 감당할 수 없다”며 인수 포기 의사를 밝혔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대우건설의 10개 주요 해외 프로젝트 중 6개가 원가율 100%를 웃돈다. 수입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 적자 시공이라는 의미다.

해외 부실은 대우건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플랜트시장에 진출한 건설사 치고 어닝 쇼크를 겪지 않은 곳이 드물다. 지난해 주택·건축 분야에서 유례없는 실적을 올린 A건설사는 누적된 해외 손실을 메우느라 성과급도 주지 못했다.

고질적인 해외 부실은 저가 출혈 수주와 인적 역량의 한계가 뒤엉킨 결과다. 10여 년 전부터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 등 해외 플랜트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코리안 워(Korean war)’로 불린, 한국 업체끼리의 볼썽사나운 수주전이 펼쳐진 것도 이 무렵이다. B사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철강플랜트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C사 오너의 개인 비리까지 발주처에 폭로하는 음해행위를 벌이며 최종 단계에서 계약을 가로챘다. 상도의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해외시장 확대를 기치로 내걸었던 D사의 출혈 경쟁은 동종업계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2010년 이후 중동 가스플랜트 등에서 따낸 프로젝트들의 낙찰가는 발주처가 제시한 예정가의 45~53%에 불과했다. 반값 수주였다. 모두 실적에 눈이 먼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초한 일이었다.

저가 수주의 후유증을 증폭시킨 게 인력난이다. 수주 물량이 단기간에 늘어나면서 인력 쟁탈전이 벌어졌다. 타사로 옮겼다가 다시 직급을 올려 친정으로 영입돼 입사 동기를 부리는 일도 허다했다. 역량이 떨어지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물론 비슷한 분야의 중공업 인력까지 닥치는 대로 채용했다. 신입직원들은 업무를 익히지도 못한 채 해외 현장으로 급파됐다. 현장 관리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환율 변화, 인력·자재 조달, 사업성 등 곳곳에서 허점이 불거졌다. E사 해외영업팀장은 “인적 역량만이라도 뒷받침됐다면 저가 수주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해외건설협회 등은 아무런 중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깜냥을 넘어선 해외 수주는 2012년부터 어닝 쇼크로 돌아왔다. 건설사들이 이후 수년간 대규모 해외 손실을 털어내는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한 배경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세계 경제 회복 기류를 타고 중동 등에서 석유화학 플랜트 발주 물량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건설사들의 수주 의욕도 활발하다. 막대한 수업료를 치른 만큼 이제는 구태를 벗어날 것이란 기대를 걸어도 될까. 아직은 성급한 것 같다.

최근 F사가 오만에서 수주한 정유플랜트 공사도 벌써부터 뒷말이 나온다. 우선협상자였던 G사를 따돌리기 위해 발주처에 접근해 재입찰을 진행하도록 해 공사를 따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낙찰가도 G사보다 1500억원가량 낮은 저가 수주다. 국가적으로 손실이다. H사는 업계 수위를 꿈꾸며 올해 해외 수주 목표를 예년의 두 배가 넘는 6조원대로 잡았다. 익숙한 풍경이다. 5년 전에도 그런 식으로 배탈이 났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