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유니콘' 넘어 '데카콘' 시대
유니콘(unicorn)은 하나(uni)의 뿔(corn)을 가진 전설 속의 동물 일각수(一角獸)다. 몸통은 말과 비슷하고 발은 코끼리, 꼬리는 멧돼지를 닮았다. 유럽이나 인도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문학에서 주로 사용하던 이 용어를 경제 분야에서 처음 쓴 사람은 미국 여성 벤처 투자자 에일린 리다. 그녀는 2013년 이 동물의 희소성에 착안해 가업가치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했다. 상상 속에나 있을 정도로 드물다는 의미였다.

스타트업이 가장 주목 받는 영역은 IT(정보기술) 분야다. 독보적인 기술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익 구조나 자금력이 약하면 금방 주저앉기도 한다. ‘유니콘’으로 반짝 성공했다가 망한 기업은 ‘유니콥스(unicorpse·죽은 유니콘)’라고 부른다.

전 세계에서 ‘10억달러 클럽’에 오른 유니콘은 2013년 39개에서 올해 하반기 213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미국 기업이 절반인 107개로 1위를 차지한다. 중국(56개), 인도·영국(각 10개), 독일(4개)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에는 쿠팡, 옐로모바일 등 2곳뿐이다.

유니콘이 늘어나자 이보다 가치가 10배 높은 1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데카콘(decacorn)’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유니는 1, 데카(deca)는 10을 뜻하는 접두사다. 뿔이 10개 달렸으니 유니콘보다 희소가치가 10배 크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통신사 블룸버그가 2015년 처음 사용했다.

‘100억달러 클럽’으로 불리는 데카콘 기업은 현재 13개에 이른다. 미국(7개)과 중국(5개) 기업이 대부분이다. 그제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소개한 미국 7대 데카콘 중 1위는 차량 호출업체 우버(680억달러)다. 다음으로 숙소 임대업체 에어비앤비, 우주관광회사 스페이스X, 오피스 공유업체 위워크, 이미지 공유 사이트 핀터레스트, 바이오 스타트업 새뭄드, 웹 파일공유 서비스 드롭박스 순이다.

중국 기업으로는 스마트폰 제조회사 샤오미(460억달러)를 비롯해 디디추싱, 루닷컴, 굿차이나인터넷플러스, DJI이노베이션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데카콘’을 꿈꾸는 세계의 창업자들은 오늘도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선전(深)의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는 눈앞의 실적이 아니라 창업가의 비전과 꿈, 성장 속도, 미래 가치 같은 무형자산이다. 자원 대신 두뇌로 승부해야 하는 우리나라에 유리하다.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의 꿈을 이루는 젊은이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러다 보면 유니콘의 100배(hecto·헥토) 가치인 ‘헥토콘(hectocorn)’도 한국에서 나올지 누가 아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