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융합과 팀워크 '기업가정신'이 4차산업혁명 시대 공학교육 핵심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 이후 4차 산업혁명은 세계적 화두다. 사물인터넷(IoT)에 필수적인 스마트 센서 강국 독일과 일본이 4차 산업혁명을 의도적으로 ‘세몰이’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질이다.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 최대 ‘핫이슈’임은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언론, 재계, 교육계 등 각 분야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전략과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IoT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 전체에 메가톤급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다가오는 장밋빛 미래만은 아니다. 그간의 산업혁명사에서 볼 수 있듯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주도하는 국가의 성공 확률은 높은 반면 주변국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혁명기에는 철저한 대비와 전략, 깨어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도 기존 교육·연구 방식에서 벗어나 전환기적 실천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세기를 이끈 생산성·효율성 중심의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신자본주의적 교육시장 논리를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흔히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과 대비해 융합혁명, 서비스 혁명, 다양성의 혁명이라 일컫는다. 생산 및 서비스 방식과 개개인 삶의 형태가 크게 바뀐다는 뜻이다. 특히 대량생산에서 벗어나 고객의 수요에 맞춘 다양한 틈새(niche) 생산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자연히 일자리(job) 중심의 시대에서 일(task) 중심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도 수반한다. 개인의 다양한 특성에 기반한 소규모 스타트업이나 1인 창조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가 이를 입증한다. 이러한 기업 형태 변화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와 더불어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전문지식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은 개성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춘 인재다. 시험에 강한 인재, 스펙이 좋은 인재는 유능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될 수 있겠지만 혁명기를 뚫고 나갈 전사나 선구자가 될 수는 없다. 전환기의 전사는 새 시대를 창의적으로 헤쳐 나가는 열정 가득한 ‘기업가’다.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전사들은 각종 제도를 주도적으로 개혁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세상에 필요한 제품을 설계할 뿐 아니라 제도와 관습에 대한 기존 틀을 크게 바꾸어놓는 것도 이들이다.

코딩 등 소프트웨어(SW)에 강한 정보기술(IT)형 인재도 좋고, 깊이와 시야를 겸비한 T자형 인재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기업가정신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 세상의 강한 저항과 내부의 강한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 여러 나라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기업가정신을 강조해 가르치고 있다. 1991년에야 소련에서 벗어난 인구 130만 명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가 어떻게 스카이프 등을 개발한 IT 강국이자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자리 잡았는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100유로(한화 13만 원)면 받을 수 있는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시민권’은 기업가정신의 부산물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 2013년 시작된 산업통상자원부의 ‘2단계 공학교육혁신사업’을 통해 전국 70여 개 대학이 새 시대에 조응하는 교수학습법의 시험적 개발 및 최신 융합신기술에 기반한 산학협력, 창의·융합 아이디어와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 토대한 시제품 제작, 융복합기술 기반의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 등을 펼쳐왔다. 기존 교육·산학협력사업과 차별화된 점은 대부분 프로그램을 소규모로 새롭게 시도하고 있으며 융합과 팀워크를 가장 중시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려대는 매년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등 기업의 문제를 전달받아 대학생 공모를 통해 문제해결 방안과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10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산학협동으로 시제품을 구현해 호평을 받고 있다. 동국대도 학생들이 참여 기업에서 인턴십을 수행하는 동안 산업체 주제를 받아 졸업 작품을 위한 캡스톤 디자인을 수행한다. 지난 2015년에는 11개 기업에서 14개 주제를 받아 논문 10편, 특허 3건, 기술이전 5건의 성과를 도출했다. 전북대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해외와 한국 대학생들을 매칭(matching)해 꾸린 20개 내외 국제학생팀으로 하여금 매년 글로벌 공학 이슈에 맞춘 시작품을 내놓고 있다. 창의적이고 협동적인 마인드 개발은 물론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다.

올해는 11월9일부터 10일까지 이틀 동안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이들 70개 대학 공학도들의 축제 ‘e2페스타 2017’(www.e2festa.kr)이 열린다. 여러 의미 있는 성취의 배경에는 사업 참여 교수와 학생들의 철저한 기업가정신이 자리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기업가정신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중국 인민일보 인터뷰에서 “제2의 저커버그는 중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과 IT 기술 발전정책을 보면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도 분발해야 한다. 한국판 저커버그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은 IT와 SW 기술에 대단한 저력을 지녔다. AI와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 꾸준히 투자하고 인재를 집중 육성한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성패는 철저한 기업가정신 함양, 정부와 사회의 지속적 지원정책에 달렸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엔젤투자자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 결정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정신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과 공학교육 혁신을 이끌어갈 핵심 동력인 것이다.

김동원 < 공학교육혁신협의회장·전 전북대 공과대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