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이 사인(私人)인 최순실 씨에게 사전에 전달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최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그동안 논란을 빚은 소위 ‘비선실세’ 존재를 대통령이 결국 시인하기에 이른 셈이다. 국가지도자로서 정부와 청와대 공식 참모들이 아니라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은 것은 이유 여하를 떠나 적절치 못했다.

그간 비선실세 논란은 대개 실체 없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최씨의 존재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드러나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청와대가 충격에 휩싸였다지만 국민은 실로 할 말을 잃었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이나 발언자료 등을 먼저 받아 봤다는 것은 말 그대로 국기 문란이라 할 만하다. 장관들의 대면보고조차 거의 받지 않던 대통령이 국정 현안들에 대해 최씨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제 개헌 제안조차 국민은 곧이곧대로 듣기 어렵게 됐다.

물론 독신인 대통령으로선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누구든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동생 부부와 조카도 청와대에 얼씬도 못 하게 할 만큼 가족·친족과도 거리를 뒀던 대통령이다. 그런 결벽증 탓에 과거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최씨를 더 가까이했을 수도 있다. 세간의 소문처럼 최씨가 국정을 농단하고 인사에 개입할 정도까지 대통령이 용인하진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보다는 최씨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무기로 호가호위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씨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임기는 아직 1년여가 남았다. 이제라도 정부 공식조직을 통해 귀를 활짝 열고 더 많은 사람과 공론장에서 만나길 바란다. 최씨 문제로 인해 앞으로 닥칠 대내외 위기 대처까지 흔들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