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차단해야 할 '분식회계 유혹'
미국 역사학자 제이컵 솔이 쓴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에 따르면 회계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띠게 된 계기는 19세기 미국 철도 사업이었다. 막대한 돈이 투자되고 주식과 채권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업의 경영상태를 파악해야 할 이유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록펠러나 존 피어폰트 모건 같은 당시 미국 기업가와 금융가들은 회계장부를 고의로 거짓 기재했다. 분식회계였다.

현재의 기업, 회계법인들도 여전히 분식회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엔론이 대표적이다. 40여개국에 2만1000여명의 직원을 뒀던 엔론은 천문학적인 분식회계가 드러나 결국 파산했고, 경영진은 모두 수십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엔론의 분식회계를 묵인했던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엄한 처벌을 받고, 시장의 외면 속에 문을 닫았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적 지탄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에 집중돼 있지만, 회계부정을 적발해 처벌해야 하는 금융감독당국의 무능도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금융감독원은 2014년과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회계감리를 할 기회를 눈앞에서 두 번이나 놓쳤다. 대우조선해양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눈 뜬 봉사’였다. 거의 비슷한 영업구조고, 해양플랜트에서 막대한 적자를 냈던 ‘빅3 조선사’ 중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는데 대우조선해양만 수천억원의 이익을 냈다면 “대우조선해양의 회계가 좀 이상하다”는 합리적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지난해 말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감리에 착수했지만 지금까지도 조사는 진행 중이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와중에 외부회계감사를 강화하는 법률안에 대한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엔 분식회계를 한 회계법인 임원이 참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을 예방하지도, 적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엄두’도 아직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이제 누가 기업의 회계장부를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 어떤 기업이, 어떤 회계법인이 허수아비인 금융당국을 두려워할까. 금융감독당국의 분골쇄신이 필요한 때다.

김영주 < 더불어민주당 의원 joojoo201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