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테러방지법, 사후약방문 만들려는가
최근 국제사회는 파리 테러에 이은 말리 테러와 미국 캘리포니아 테러로 인해 2001년 미국 9·11테러 이후 최고 수준의 불안과 공포 속에 빠져들고 있다. 현대 테러의 특징이 첨단 전자통신 수단의 발달로 거대화, 지능화, 첨단화하고 있는 데 비해, 대응시스템 작동은 종합적이고 입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對)테러 정책과 작전 및 수사정보체계 사이의 연결고리 체제를 단단하게 조여놓고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적인 대테러 정책과 정보수사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과 프랑스 당국의 현실이 이런 정도라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대테러 관련 능력과 시스템은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진 정보기관과 정책당국이 모두 갖고 있는 대테러 관련 법령조차 단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도 지난 파리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던 야당이 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동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입법에 실패했다. 대테러 기본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은 테러 대책회의 및 대테러센터 설치운영과 관련한 기본법 중의 기본법이다. 물론 이 법 하나만으로는 각국의 테러리스트 동향을 사전 파악하고, 테러자금의 흐름을 꿰뚫어보거나 테러단체와 위험인물 간 대화내용을 듣고 테러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사후 색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세계 테러단체들은 한국의 이런 입법상의 미비점을 알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국내 테러를 획책하고 있다. 이미 국가정보원은 48명의 테러 우려 외국인의 테러의심자금을 포착했고, 내국인 2명도 적발했다. 이들 테러 가능 인물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휴대폰 감청불가, 특정금융정보법(FIU법)상 테러자금 추적권한 결여사실을 악용해 테러를 모의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관련 법률이 없어 이들에 대해 국외추방과 여권무효화 조치밖에 할 수 없었고, 국제테러단체와의 연계 등 깊이 있는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런 법의 맹점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UN 안전보장이사회도 곧 ‘이슬람국가(IS)’ 자금 차단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할 예정이다.

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동조자 포섭을 막고 국가기간시설 전산망에 대한 해킹을 예방하기 위해선 ‘사이버테러방지법’도 제정해야 한다. 한국의 최고 위협세력인 북한은 이미 방송사와 은행 전산망을 마비시키고,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서버를 해킹하는 등 가공할 수준의 사이버테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최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북한을 4년 연속 테러위험국가로 분류하면서 각별한 대응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사이버테러방지법 미비로 인해 민간 산업부문에 대한 기초조사나 지원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적극적인 테러 예방과 대응은 국가 간 정보협력과 통신제한 조치, 자금흐름 검색, 신고포상 등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가능한 종합예술이다. 국제적 연계망을 갖추고 검은 자금을 세탁하며 사회불만자를 끌어들여 지하드(聖戰)로 내몰고, 해킹을 통해 국가기간망을 마비시키는 테러조직을 테러방지법 하나로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파리 테러가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다. 제대로 된 테러대응을 위해서는 국회가 위 4개 법안의 제·개정을 일괄처리해야 한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대통령까지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못잖게 중요한 대테러법안의 일괄처리를 직접 호소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국제연대를 주장했다. 국회 정보위원들도 해외 유수 정보기관 방문을 통해 그 입법사례를 익히 알고 있지 않나.

전옥현 < 전 국정원 제1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