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박수도 기부다
세종로 네거리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마련한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고 구세군의 자선냄비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해마다 연말이면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올해는 세월호 참사와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건·사고로 침울한 분위기가 오래 지속된 때문인지 종소리가 여느 때보다 아련하게 들려온다.

이제는 뭔가 변화된, 밝고 희망찬 분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이 2009년 11월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이 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자랑스러운 나라로 승격한 지 5년, 기부와 나눔운동이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부현황을 보면 특히 대기업의 고액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그보다는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이 개인 소액기부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기부를 약속한 개인들이 멤버가 되는데 금년에 예년보다 많은 100명이 늘어 현재 멤버가 646명이나 된다고 한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직장인 등의 소액 정기기부도 늘어나고 있어 반가운 일이다.

변호사들의 사회봉사 즉, 프로보노(probono)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이맘때면 김장나눔, 연탄배달, 자선축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이 연일 보도된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 남모르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시작한 네팔 오지 어린이를 위한 초등학교 교사신축사업의 9번째 학교 기공식에 지난 3월 참석했다. 여러 후원자와 함께 2박 3일의 힘든 산행 끝에 1800m의 마칼루지방 산간오지에 도착하자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학생과 주민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교부지를 기부한 마을 독지가들에겐 감사의 박수를, 꿈에 부푼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엔 격려의 박수가 전해졌다. 기공식은 박수로 시작해서 박수로 끝났다.

자선을 의미하는 영어의 ‘philanthropy’는 원래 인류애를 뜻하는 말이다. 어려운 이웃,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동을 말한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박수를, 도움을 받는 사람에겐 용기를 북돋우는 박수가 필요하다. 박수는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기부행위이며, 박애정신의 발로이다. 우리 모두 올 한 해를 박수로 마감한다면 밝은 희망의 새해를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