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명량'과 문화 떼거리즘
영화 ‘명량’이 개봉 후 12일이라는 최단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또 그 영화 이야기야?” 하며 짜증을 내는 독자들이 벌써 상당수 있을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신문이 온통 이 영화 이야기니 이런 불평이 나올 만도 하다. 신문뿐이랴. 온라인은 물론 방송도 블록버스터 ‘명량’ 이야기로 거의 도배질되다시피 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흥행 비결을 분석하고 영화 속에서 교훈을 찾느라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냐, 지루하고 어설픈 졸작이냐를 두고 싸움질도 나는 모양이다. 필자는 솔직히 왜 그리 관객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 그냥 여름방학용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다. 이 영화에서 꼭 무얼 배워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영화에 거의 문외한인 탓이 크겠지만.

영화 감상도 편식·쏠림 심해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명량’ 같은 대박 영화를 안 보고 살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너무나 많은 매스컴이 그 이야기를 해서다. 가급적 모든 세상 물정에 눈과 귀를 열어 둬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 더 그렇다. 영화 내용을 모르면 어디 가서 대화에 끼기도 힘들고 시쳇말로 왕따 당하기 일쑤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끝난 ‘정도전’도 한동안 굉장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도전 이야기를 했고 신문 칼럼이나 기고문의 단골 소재였다. 대부분 “정도전에서 무얼 무얼 배우자~”는 그런 식이었다.

대중문화 시대다. 수많은 사람이 문화 예술 작품을 소비하고 그런 대중의 소비력을 자양분으로 관련 산업도 발전하는 건 당연하다. 1인당 연간 관람 영화 수 세계 1위(4.12개)일 정도로 열성적인 한국인의 ‘대중문화 사랑’이 지금의 영화산업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한류 열풍 역시 이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편식과 쏠림은 좀 그렇다. 무슨 드라마나 영화가 좀 뜬다 싶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은 일종의 ‘문화 떼거리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당 산업은 큰돈을 버니 좋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취향은 제쳐 두고 그저 남이 보니까, 혹은 인기가 있다니까 무조건 따라가는 추종 소비는 분명 문제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 상품에 대한 변별력이 없어질 뿐 아니라 해당 산업의 고른 발전에도 별도 도움이 안된다.

대중문화의 생명은 다양성

영화나 드라마가 마치 전부 사실인 양 착각하는 것도 좀 이해하기 어렵다. 주지하는 대로 시나리오나 연출 단계에서 작가나 감독에 의해 많은 부분이 각색된다. 극적 흥미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마치 모든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극중 리더십을 배우자고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하기 힘들다.

몇몇 TV 인기프로에 온 나라가 휩쓸려 다니는 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드라마 주인공이 입은 옷을 해외에서 살 수 있느니 없느니가 주요 뉴스가 되고 개그 프로에서 만들어낸 유행어가 일상의 용어로 자리 잡는다. ‘꽃보다 xx’라는 TV 프로에서 소개된 해외 여행지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미어터질 지경이다.

유독 한국인들은 한참 유행 타는 것,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길 좋아한다. 언론도 이를 부추긴다. 하지만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 아닐까. 영화는 영화고 TV는 TV일 뿐, 유행 따라 다니지 말고 그냥 내 맘에 드는 걸 편하게 즐기자.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