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어떤 경우든 공짜는 없다
나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은 보이지 않고 ‘벌거숭이 임금’만 보이니 말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재단한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마치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부정하면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취급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 좋아하고 박수쳤다.

천진한 꼬마 아이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숭이라고 깔깔대자 그제야 사람들이 인식했듯이, 최근 ‘2013 세법 개정안’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정말 아름다운 옷’이 아닌 ‘벌거숭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만 알았어도 그렇게 황당해하지는 않았을 터다. 복지 공약에 들어갈 돈이 5년간 80조원, 그 외의 공약까지 포함하면 135조원이나 된다. 새로 조달돼야 할 돈이 설마 내 지갑에서 나가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정부가 내민 계산서에 국민은 당황하며 펄쩍 뛰었다.

조세저항에 당황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세율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다”라고 둘러댔다. 아무리 세율을 올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나면 그것이 증세지 어찌 증세가 아닌가. 꼼수도 그런 꼼수가 없다.

심상치 않은 여론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중산층의 지갑을 얇게 하는 것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정부는 하루 만에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을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이고, 55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는 연간 세 부담 증가액을 16만원에서 2만~3만원으로 대폭 낮추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복지 확대로 인한 증세 부담의 대부분을 상위 7%가 떠안게 됐다. 그러나 상위 7%에 대한 증세로 부족한 세수를 메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여기에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조달해보려고 하는 모양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분명 필요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면 나그네가 더욱 옷깃을 여미듯 정부가 압박할수록 지하경제는 더욱 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무조사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세수는 예상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민주당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현행 최고 22%(과세표준 200억원 초과)인 법인세율을 25%(과세표준 500억원 초과)로 올리고, 소득세 최고세율(38%) 과표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추겠다고 한다. 이른바 부자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법인세는 상위 1% 대기업이 86.1%를 낸다. 근로소득세는 상위 20%가 84.7%를 내고 있다. 이런 마당에 부자증세로만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세수를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짜는 없다. 보편적 복지를 원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서민·중산층 할 것 없이 국민 모두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이다. 세금을 더 내기 싫으면 보편적 복지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를 망친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든지, 보편적 복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국민도 선택해야 한다. 세금을 더 내든지, 보편적 복지를 포기하든지. 나는 보편적 복지를 포기하는 쪽으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는 것보다 보편적 복지를 포기하는 것이 국민 개개인과 국가 전체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원이 낭비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복지 수혜자는 점점 증가하는 반면 세금 증가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로 복지에 필요한 재원은 점점 감소하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으로 나오는 우유가 버려지고 있다. 경기도는 재원 부족으로 무상급식을 2년 만에 포기했다. 보편적 복지로 가면 종국에는 우리 모두 정말로 벌거숭이가 될 수 있다.

안재욱 경희대 서울부총장·경제학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