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동안 만지작거리던 전세대책을 한쪽으로 밀어놓은 모양이다. 전세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별도의 대책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재 150가구 미만으로 제한된 도시형 생활주택의 가구 수 상한을 300가구 미만으로 늘리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어 그 통과를 기다리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여기에는 최근의 전셋값 상승은 2년여 전 금융위기로 급락한 가격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앞으로도 반짝 상승은 있겠지만 지속적인 오름세는 없을 것이란 시각이다. 정말 그럴까. 당장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전세시장은 철저하게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거주할 집이 필요한 사람만 얻기 때문에 가수요가 붙을 여지가 없다. 반면 공급은 가수요를 전제로 이뤄진다. 집을 사놓으면 언젠가 가격이 급등해 대박을 터뜨린다는 심리가 전세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경우 전세물량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시장상황이 딱 그렇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0월 기준 우리나라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2억5000만원 정도이고 집값에 대한 전셋값 비율은 평균 56%다. 2억5000만원짜리 집을 살 경우 전셋값이 1억4000만원 정도니까 자기 돈은 1억1000만원쯤 들어간다는 의미다. 지난 1년간 전국 평균 아파트값 상승률이 2.0%인 점을 감안하면 500만원 정도 오른 셈이다. 투자 수익률 4.5%다. 여기에 각종 세금과 유지수리비까지 더할 경우 수익률은 더 떨어진다. 굳이 집을 사서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는 여건이다.

기존에 전세를 주고 있는 사람도 월세로 돌리는 게 유리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월세로 임대할 경우 연 수익률은 보통 5~10% 수준이다.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전체 임대주택 물량 가운데 전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작년 1월 60.1%였으나 올해 9월에는 56.4%로 줄어들었다. 총 임대주택의 3.7%가 전세에서 월세로 돌아선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인구가 2018년께부터 줄어든다지만 집을 살 수 있는 구매계층의 감소는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 대세다. 당분간은 인구구조 변화에 의한 주택수요 감소라는 요인이 시장을 짓누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출규제,세금중과 정책 등이 겹치면서 주택 구매 욕구를 꺾고 있다.

더구나 내년부터 주택입주물량이 확 줄어들 게 분명하다. 2008년 이후 주택건설 인 · 허가 및 분양 건수가 급감한 탓이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입주예정 아파트는 총 18만8000여가구에 불과하다. 올해 입주 물량 30여만가구에 비해서는 37%,최근 10년간 연평균 입주 물량 31만3000여가구보다는 40% 정도 적다. 부동산 시장 흐름으로 보나 입주예정 물량으로 보나 전세난은 재연될 소지가 충분하다.

정부는 '안정세'라는 판단으로 손을 놓고 있지만 전세대책을 마련하는 건 작정하고 달려들어도 간단치 않다. 전세금 대출확대,도시형 생활주택 가구 수 조정 등의 임시처방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물량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전제 아래 임대주택 공급량과 공급시기를 조정하는 등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인 것 같다. 그게 대응시기를 놓쳐서 생길 수 있는 혼란을 막는 길이다. 금융위기를 간신히 헤쳐나온 국민들을 다시 어려움에 빠뜨려서는 안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