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유통 빅뱅'입니다. 시장 안팎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십 수년에 걸쳐 일어나야 할 변화들이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 플랫폼 간 합종연횡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올 들어서만 롯데쇼핑이 중고나라 지분을 인수하거나 네이버와 신세계가 상호 지분을 교환하는 등의 딜(deal)이 숨가쁘게 성사되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더블유컨셉코리아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고, GS리테일은 배달 서비스인 요기요 지분 인수 참여를 발표했습니다.

유통사들에 신용등급을 부여해야 하는 신용평가사들도 덩달아 분주해졌습니다. 유통사들은 국내 회사채 발행 시장의 '터줏대감'입니다.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수천억원 단위의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회사채 발행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거든요. 그만큼 기관투자가들의 관심도 높아 회사채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느 업종보다 적시적이고 정교한 신용평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이후 신용평가사들이 유통 산업의 트렌드 변화나 개별 딜, 각종 투자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한 순간의 경영 판단이나 실기가 기업의 존폐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경계심 때문입니다. 신용등급의 안정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자료=한국기업평가
자료=한국기업평가
최근 유통 시장의 구조 변화 과정에서 업태별 시황은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유통사들의 핵심 사업이 조금씩 달라 경영 전략도 다른 양상을 띠고 있죠. 일단 이마트와 신세계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대응으로 전략이 축약됩니다. 신세계그룹은 소매유통 전업도가 매우 높은 시장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소매유통업이 매출과 자산에서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소매유통 시장 변화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할 수밖에 없죠.

채널 시프트(이동)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고 있는 이마트가 공격적으로 각종 인수합병(M&A)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채널 시프트의 영향이 제한적인 백화점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신세계는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 집객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고요. 신규 진출한 면세점 사업을 육성하는 데 고심하고 있답니다.

롯데그룹은 재무구조 안정화와 영업효율성 개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소매유통, 화학, 호텔, 음식료 등으로 다각화돼 있습니다. 업종별 시황에 따라 실적 가변성이 서로 상쇄되고 있습니다.

최한승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백화점과 홈쇼핑 부문의 안정적인 현금창출능력이 채산성이 떨어지는 할인점 구조조정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최근엔 화학 부문의 현금창출 규모가 줄고 호텔 부문의 실적이 부진해져 투자 조절을 통해 차입 부담을 제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유통사 중에 가장 여유 있는 편입니다. 소비 패턴 변화의 영향이 가장 덜한 백화점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유통사 중에 실적도 가장 좋습니다. 조급하지 않게 콘텐츠 확보와 면세점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모습이랍니다.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명품이나 가정, 가구 수요는 가파르게 늘고 있거든요. 경쟁사들이 이커머스(온라인 전자 상거래) 사업 확장에 집중하는 새 현대백화점은 가구나 홈인테리어, 패션 등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오히려 오프라인 점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쿠팡이나 플랫폼사들이 완전한 사업 모델을 갖춘 건 아닙니다. 예컨대 쿠팡의 경우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으며, 자체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 건 장점입니다. 하지만 수익 구조가 이커머스에 집중돼 있고 고정비 부담도 높습니다. 뚜렷한 약점이죠.

한국기업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플랫폼사들은 주력 서비스에 기반해 잠재 고객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고, 높은 집객력도 갖췄습니다. 이에 비해 물류 등 오프라인 인프라가 뒤처지고 자체적인 상품 기획력이 부족한 편이죠.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갈수록 유통 업계 M&A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통사뿐 아니라 플랫폼사들도 각자만의 강·약점이 있기 때문이죠. 김병균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온라인 시장 역시 시간이 흐르면 오프라인 시장처럼 브랜드 인지도와 회원 수 등에 따라 과점적 경쟁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다 보니 각자의 약점을 상쇄하기 위한 유통사와 비(非)유통사의 전략적 제휴와 M&A 등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각사별 사업 전략의 우열을 가리긴 어렵기 때문에 투자와 성과의 적절한 균형 유지가 향후 유통사들의 신용도 향방을 가를 것이란 설명입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