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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묘목 매년 6만 그루 파는 30대 '커피 농부'

428잔. 한국인 한 사람이 1년에 마시는 커피의 양(2015년 기준)입니다 하루에 1.2잔꼴로 마시는 셈이죠. 커피 소비가 늘어나면서 개개인의 취향도 세분화되는 추세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생산된 원두로 만든 커피인지도 생각해가며 마십니다. 기자인 저도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신맛이 강하고,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신맛은 약하지만 고소한 풍미가 좋다’ 정도의 커피 상식은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커피 애호가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커피나무가 자라고, 커피콩이 재배된다는 사실입니다. 커피나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희정 농부(34)를 만났습니다.

임 농부의 농장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전궁리 120번지에 있습니다. 길게 뻗은 2차로 도로를 지나 좌회전을 해 들어가니 저 멀리 노란색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이곳에서 임 농부는 커피나무를 키웁니다. 비닐하우스 6개동 1983㎡(약 600평)에 1년생 작은 화분과 8년생 성목을 함께 키웁니다. 사계절, 그중에서도 추운 겨울이 있는 한국에선 열대 작물인 커피나무를 노지에서 재배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에서 온도만 잘 관리해주면 재배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이곳에선 1000원짜리 1년생 작은 화분이 매년 약 6만개씩 판매됩니다. 8년생 성목은 10만 그루까지 있던 게 대부분 판매돼 1만 그루만 남았습니다. 농장의 주 고객은 전국의 커피 체험 농장들입니다. 강릉, 제주, 고흥, 여수 등에 잇따라 커피 체험 농장이 생기면서 묘목 수요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임 농부는 “커피 체험 농장을 아이템으로 귀농하려는 사람들은 한번에 1000만원 어치의 나무를 사가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1~8년생 묘목을 모두 판매했지만 2~7년생은 다 판매가 돼 8년생과 올해 새로 심은 1년생 나무만 남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매출은 1억4000만원 가량입니다.
커피 묘목 매년 6만 그루 파는 30대 '커피 농부'

◆스타벅스와 ‘커피프린스 1호점’

임 농부가 농장에 커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2004년입니다. 그가 커피나무를 심게 된 것은 커피 문화가 그무렵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타벅스 등 커피전문점들이 확장하는 것을 보고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커피마니아들이 호기심에 나무를 사갔습니다. 하지만 식물을 키워본 경험 없이 커피를 좋아해서 나무를 샀던 커피마니아들은 커피나무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커피나무는 키우기 어렵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죠. 임 농부는 “커피나무는 온도 정도만 맞춰주면 오히려 키우기 쉽다”며 “화초를 원래 키워본 사람이 커피나무를 먼저 재배했으면 오히려 ‘키우기 쉬운 식물’이라고 알려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소소하게 농장이 알려질 무렵인 2007년 방영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은 농장 경영에 새로운 전기가 됩니다.

사실 커피나무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0년대입니다. 당시 다양한 수입작목이 들어오면서 열대성 작물인 커피나무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커피에 대한 관심이 적어 큰 인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임 농부는 “드라마가 뜨면서 전 국민이 커피에 대해 알게 됐다”며 “카페 창업 붐이 일어났고, 바리스타 학원도 속속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카페는 포기…잘할 수 있는 걸 하겠다

임 농부의 농장에는 요즘 대부분의 농장에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그는 커피나무를 키워 묘목을 파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커피나무 재배 노하우가 누구보다 뛰어난데 왜 커피숍은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커피나무를 심을 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죠. 그런데 잘 못하겠더라구요”라며 자신의 실패기를 들려줬습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임 농부는 농장에 커피숍과 체험장 등을 운영했습니다. 커피잔을 만드는 도자기 공방도 계획 했습니다. 그런데 농장에서 나무를 재배하는 것은 정말 잘 할 수 있겠는데 ‘서비스업 마인드’가 없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임 농부는 “저는 농업고등학교와 농업대학교를 나온 순수 농업인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다른 시설들을 접고 나무 생산형 농장으로 바꿨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농업인인 그가 영농후계자가 되어 농장을 이어받게 된 계기에 대해 좀 더 물어봤습니다. 도시로 나가서 직장에 다니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본 게 화훼농장이라 자연스럽게 농업을 택하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 아버지의 농장 한켠에서 물상추를 재배했던 경험을 얘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못을 만들어서 물상추를 재배했어요. 물상추는 어항을 꾸미는 용도로 사용하는 식물이에요. 정성 들여 재배한 물상추를 사람들이 사가는 것을 보고 식물을 키우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임 농부는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농장에서 아버지인 임병철 씨(68)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커피 묘목 매년 6만 그루 파는 30대 '커피 농부'

◆“일본에서 한국식 커피나무 재배할 것”

임 농부의 꿈은 커피나무 재배 노하우를 들고 해외에 농장을 짓는 것입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 있는 커피나무 농장주와 의견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임 농부는 “일본도 따뜻한 오키나와를 제외하면 커피나무 농장이 없다”며 “일본 본토에서 커피나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임 농부의 농장에는 3월부터 커피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8월까지는 열매가 계속 열려 나무의 초록빛과 커피열매의 붉은빛이 어우러집니다. 하얀 꽃은 4월 중순부터 핍니다.

혹시 근처를 지나가시다가 농장에 들러 1000원짜리 화분 하나라도 구매하고자 하신다면 6월을 추천합니다. 그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임 농부가 고객들에게 농장에서 재배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한잔 내려드린다고 하네요. 저도 그 무렵이 되면 한번 더 가볼까 합니다.

FARM 강진규 기자

커피 묘목 매년 6만 그루 파는 30대 '커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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