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현악기 전문점 지윤악기의 박경배 대표.(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20년간 피아노와 함께한 황창현 성도피아노 대표,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이벤트.
관현악기 전문점 지윤악기의 박경배 대표.(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20년간 피아노와 함께한 황창현 성도피아노 대표,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이벤트.
1969년. 서울 종로 한복판에 ‘낙원삘?’이 들어섰다. 지하 1층과 지상 5층 상가에 15층짜리 아파트가 함께 있는 곳.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탑골공원 옆 파고다 아케이드가 철거되면서 그곳에 있던 악기상점이 건물 안으로 하나 둘 들어왔다. 1980년대 낙원악기상가는 말 그대로 음악인들의 ‘파라다이스’였다. ‘쎄시봉’에서 시작된 통기타 열풍에 록 음악의 인기가 더해졌다. 카바레, 미8군 무대에 오르는 악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시장도 커졌다. 300여개의 악기상과 3만여개의 악기, 국보급 악기 수리 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세계적 규모의 악기상가가 됐다.

1990년대 전국을 장악한 노래방은 악기 수요를 갉아먹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철거 위기에까지 놓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건물 안전성은 물론 보존가치가 재평가되면서 철거 계획이 철회됐다. 지난해 4월부턴 상인들과 건물 운영사가 힘을 합쳐 ‘우리들의 낙원상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20대는 미디 등 전자 악기를 사러, 30~50대는 악기를 배우러, 60~80대는 그 시절을 추억하러. 그렇게 각자의 낙원을 찾아 낙원상가에 모여든다.
타악기 전문점 드럼채널의 정구항 대표(왼쪽), ‘낙원밴드’의 버스킹 공연.
타악기 전문점 드럼채널의 정구항 대표(왼쪽), ‘낙원밴드’의 버스킹 공연.
음악인의 낙원에서 시민의 낙원으로

지난 13일 찾아간 낙원상가 4층 녹음실에서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 다섯 명이 신나게 음악을 녹음하고 있었다. 어둡고 답답한 녹음실이 아니다. 통유리로 된 녹음실에서는 푸른 잔디로 뒤덮인 낙원상가 야외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 녹음실 이용료는 한 시간에 1만5000원.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헐고 합주실과 녹음실로 바꿨다. 지난 연말에는 한 달 전 예약이 다 찰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낙원상가는 칙칙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허리우드극장 외에 별다른 문화공간도, 휴식공간도 없었다. 2012년부터 서서히 변했다. 야외 광장에 100석 규모의 아트라운지 ‘멋진 하늘’ 공연장을 조성했다. 작년에는 ‘반려악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각종 악기와 보컬 강습, 재즈와 클래식 공연을 하고 영화를 상영했다.

공간이 바뀌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달라졌다. 색소폰과 아코디언 등 클래식 악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층이 찾았다. 음악 작곡과 믹싱에 필요한 미디 기기 상점은 교복 입은 중·고교생과 대학생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몰려들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악기를 수리하러 찾아오기도 하고, 낙원상가 장인들을 초빙하기도 한다. 주한 외국인이 참여해 밴드 음악을 재능기부 하는 ‘낙원상가 서포터즈’도 생겼다.

터줏대감처럼 한자리를 지켜온 사람들도 있다. 1976년 문을 연 한양악기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 최신해 씨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손님들도 대를 이어 찾아온단다.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플루트 장인도 있다. 신광악기의 지병옥 씨는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책상 앞에서 플루트와 씨름 중이다. 유강호 유일뮤직 대표는 “3만여종의 악기를 취급하는 악기전문상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며 “전통성과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큰 공간을 시민들이 편하게 즐기러 오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반려악기 찾아볼까

낙원상가의 반려악기 캠페인은 직장인들 사이에 인기다. 반려악기 캠페인은 낙원상가가 ‘단순한 악기를 넘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1인 1악기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악기·보컬 강습인 ‘미생 응원 이벤트’는 두 달간 주 1회 저녁에 무료로 열린다. 지난해 다섯 차례 진행했고, 현재 5월 학기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기타와 보컬, 우쿨렐레 강습 등이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악기 강습 이벤트, 중고 악기 기부 캠페인 등도 있다. 안 쓰는 악기를 기부하면 장인의 손을 거쳐 지역아동센터에 전달하는 악기나눔 캠페인도 한다.

주말에는 ‘나만의 우쿨렐레 만들기’ 이벤트도 열린다. 재료비 5만원만 내면 반제품인 우쿨렐레에 줄을 끼우고 마감재를 칠하는 등 직접 체험하며 악기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다. 낙원상가에선 매주 토요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클래식 렉처 콘서트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다’(4월29일),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의 ‘어 나이트 인 서울’(5월20일), 고상지 트리오의 ‘한여름밤 아르헨티나 여행을’(6월17일) 등이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5월과 6월에는 ‘비긴 어게인’ ‘말할 수 없는 비밀’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 등 야외 영화 상영회도 예정돼 있다. 한낮에는 야외무대 앞 잔디마당에서 악기상가 상인들이 악기를 들고 와 장터를 여는 ‘우리들의 낙원상가 플리마켓’도 마련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