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에 무슨 일이…5년새 매출 반토막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갔다 돌아올 때 직장인들은 회식용으로 양주를 사왔다. 대부분 발렌타인(사진)이었다. 선물용으로도 샀다. 술집에서 양주를 마실 때는 임페리얼을 많이 찾았다. 프랑스 회사 페르노리카는 이 두 가지 술로 국내 양주 시장의 강자가 됐다. 그러나 요즘은 두 가지 모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페르노리카 실적은 이런 추락을 보여준다. 5년 만에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위스키 시장의 침체 속에 저도주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사관계 등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5년 만에 매출 반 토막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2015년보다 4.5%가량 줄었다. 시장 위축으로 점유율 1위인 디아지오코리아(윈저, 조니워커) 판매도 10% 정도 감소했다. 이 정도면 페르노리카코리아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작년 위스키 판매량은 전년 대비 19.5% 줄어든 35만6255상자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은 21.3%로 골든블루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업계에서는 ‘페르노리카의 추락’이라는 말이 나온다.
발렌타인에 무슨 일이…5년새 매출 반토막
40도가 아니라 36.5도의 ‘저도 위스키’를 앞세운 골든블루는 전년보다 30%를 더 팔았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골든블루는 페르노리카가 갖고 있던 시장의 상당 부분을 빼앗으며 시장 점유율을 2015년 16%에서 작년 22%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6월 결산법인인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의 2016회계연도(2015년 7월~2016년 6월) 매출은 1191억원으로, 2011회계연도(2268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140억원으로 전년보다 60% 급감했다. 2017회계연도 실적은 더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발렌타인 등을 판매하는 별도 법인인 페르노리카코리아 역시 2008회계연도엔 2011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지난해 1055억원으로 급감했다.

◆시장 트렌드 외면…리더십 문제도

업계에서는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을 추락의 첫 번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위스키 소비자들의 취향은 다양해졌다. 위스키도 덜 독한 술을 마시거나 싱글몰트를 찾기 시작했다. 골든블루는 저도주 시장 선점에 성공했고 다른 브랜드들도 저도주와 싱글몰트 위스키로 시장을 방어했다. 하지만 페르노리카는 기존 제품에 안주했다.

작년 12월에야 저도주 위스키 ‘35 바이 임페리얼’을 출시했다. 이미 상당한 시장을 적들에게 점령당한 이후였다. 보드카 시장에서 앱솔루트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페르노리카코리아가 갖고 있지만 보드카 수요 감소와 세계 1위 보드카 스미노프의 공세에 점유율이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국내 양주업계에서 유일한 외국인 대표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르노리카는 프랑스 본사에서 대표를 파견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정용 소비 비중이 큰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전체 위스키의 80~90%가 유흥업소에서 팔리기 때문에 영업에서 업소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며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는 이 부분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사갈등도 페르노리카코리아를 어렵게 했다. 판매가 급격히 줄어든 2015년에는 파업이 있었고, 작년엔 대규모 희망퇴직을 받았다. 불안한 노사관계가 영업과 신제품 개발 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 조직 정비가 마무리됐고 저도주 위스키 판매도 본격화하는 만큼 올해부터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