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이윤배 농협손해보험 사장(58)은 지난해 2월 취임한 뒤 평소 임직원에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사장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것, 대면 보고에 집착하지 말 것, 잘 팔리는 보험 상품일수록 문제가 없는지 살필 것 등이다. 특히 보고와 관련해선 지나치게 자주 사장에게 보고하러 오는 사람은 좋은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농협손보 임직원은 이 사장의 당부를 처음 들었을 때 의아해했다고 한다. 영업 목표치를 채우는 데 방점을 두는 여느 최고경영자(CEO)와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보고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수준이 아니라 잦은 대면 보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하는 대목에 우려를 나타내는 임직원도 꽤 있었다.

취임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요즘 들어선 이 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농협손보 임직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사장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동 빨라 젊은 시절 별명 ‘쌕쌕이’

강원 속초 출신인 이 사장은 농협대를 졸업한 뒤 1979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손꼽히는 우등생이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취직이 보장된 농협대로 진학했다.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에도 4년제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놓지 못하고 동국대 야간대학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농협중앙회(현 농협은행) 서울 을지로지점에서 일한 이 사장은 오후 5시면 학교에 가야 했다. 마감으로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이 때문에 이 사장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 점심식사를 하는 데 5분 이상 걸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일찍 퇴근한다는 미안함 때문에 식사 시간을 아껴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출근시간도 오전 7시를 넘겨본 적이 거의 없다. 전날 다 못 한 업무를 개점 시간 전에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때 생긴 업무 처리 습관으로 훗날 붙은 별명이 ‘쌕쌕이’다. 업무를 맡기면 누구보다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뜻으로 상사가 붙인 별명이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빨랐을 뿐 아니라 마무리도 깔끔했다. 그래서인지 조직은 그에게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는 농협중앙회 시절인 1995년 CJ홈쇼핑 전신인 39쇼핑을 설립하는 실무 책임자로 참여했다. 농협중앙회가 39쇼핑 2대 주주였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의 첫 리스크관리부장을 맡기도 했다.

“묵묵히 일하는 직원 알아줄 것”

이 사장은 기획, 여신 등과 같은 소위 주요 부서에 발령받지 못했지만 한번도 인사에 불만을 제기한 적이 없다.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CEO에 오른 뒤에도 “뒤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앞에 나서지 않아도 사장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잦은 대면 보고를 하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다 보면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사장은 대신 ‘깨진 유리창 법칙’을 자주 강조한다. 한 장의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나중에는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취지다. 그는 “진부한 잔소리 같지만 금융회사일수록 상품의 사소한 허점이나 직원의 실수도 그냥 넘겨선 안 된다”며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할수록 ‘깨진 유리창’이 나올 가능성은 작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보다 직원들 간의 ‘수평 소통’을 더 중요시한다. 지난해 2월부터 직원 공부모임인 ‘모닝 에듀’를 신설한 것도 그 때문이다. 보통 회사가 만든 공부 모임엔 외부 강사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모닝 에듀는 내부 직원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맡는다. 자신이 일하는 부서의 업무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자리다. 보험 계약을 처리하는 기초 과정부터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같은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주제로 구성했다. 지난해 12월에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으로 240명의 직원이 참석했다.

모닝 에듀의 장점은 두 가지다. 다른 부서의 업무를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내 업무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농협손보 직원들은 “강사로 나서 평소 하던 업무를 설명하려면 익숙한 일도 공부를 더 해야 하고 질문을 받다 보면 약점도 파악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혼내는 대신 “연구해 봐”

이 사장은 모닝 에듀 프로그램의 첫 시간에만 참석한 뒤 한번도 강의장을 찾은 적이 없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공부에 참여해 주길 바라서다. 그의 평소 리더십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가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부하직원이 잘못했을 때 주로 하는 말은 “연구 좀 해 봐”가 전부다. 이 사장은 “직원이 움츠러드는 게 싫다”며 “실수하더라도 스스로 깨닫고 고쳤을 때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가 2011년 농협증권(현 NH투자증권)에서 리스크관리본부장으로 1년간 일했을 때의 에피소드도 이 사장의 업무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같은 팀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펀드상담사 자격증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 사장은 당시 증권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데도 농협중앙회에서 리스크검증단장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증권사 리스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직원들 몰래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고, 직원들과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시험을 봤다. 다행히 합격했고, 그 사실이 이후 알려지면서 직원들이 이 사장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부하직원을 닦달하기보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반응이다.

“100년 가는 보험사 만들고 싶다”

그의 이런 태도는 영업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장기 보장성 보험의 초회 보험료가 전년 대비 36.4% 증가했다. 자산건전성도 좋아졌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177.4%이던 지급여력비율(RBC)은 204.7%까지 올라갔다. RBC는 고객이 요구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금융당국 권고 기준은 150% 이상이다.

이 사장은 이런 때일수록 영업 목표치를 채우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금리나 보험금을 더 주는 것도 좋지만 건강한 재무상태를 유지해 고객의 보험료를 끝까지 책임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최근엔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보험 상품의 보장 기간도 100세까지 길어졌다.

이 사장은 “임기 동안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협손보 상품의 질을 높이고 싶다”며 “농협손보를 100년이 지나도 살아남을 회사로 만들어야 고객도 믿고 보험료를 맡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윤배 사장 프로필

△1959년 강원 속초 출생 △1977년 속초고 졸업 △1979년 농협대 졸업, 농협중앙회 입사 △1991년 동국대 무역학과 졸업 △2001년 농협중앙회 공제보험업무부 손해공제팀장 △2011년 농협증권(현 NH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 △2012년 농협은행 리스크관리부장 △2013년 농협은행 강원영업본부장 △2014년 농협중앙회 강원지역본부장 △2015년 농협생명보험 부사장 △2016년 2월 농협손해보험 사장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