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은 2006년 고민을 가득 안고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 김복용 전 회장이 별세한 그해였다. 김 회장은 마음이 무거웠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우유 소비가 줄어 매일유업의 성장은 정체 상태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김 회장은 목적지인 모쿠모쿠 농원으로 향했다. 일본 북부 미에(三重)현 이가(伊賀)시에 있는 이곳은 일본에서도 ‘6차산업’ 성공모델로 평가받는 자연농원이다. 6차산업은 1차산업인 농업과 2차산업인 제조업, 3차산업인 서비스·유통업이 모두 한곳에서 이뤄진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모쿠모쿠 농원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온 김 회장은 “곧장 사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매일유업, 우유만 팔던 시대 이제 끝…'한국판 모쿠모쿠'에 낙농미래 걸었다
○재배 생산 소비 교육을 한곳에서

22일 전북 고창에 문을 여는 ‘한국형 모쿠모쿠’인 상하농원은 식당과 숙박시설(2017년 완공 예정)을 포함해 총 9만9000㎡ 규모다. 2006년 매일유업이 내놓은 유기농 브랜드 ‘상하목장’ 제품을 생산하는 곳과 인접해 있다. 상하농원에 가면 고창지역 농민이 직접 재배한 특산물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고창에서 생산한 식재료를 활용해 소시지, 치즈, 빵, 된장 등을 직접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교실도 꾸몄다. 축산업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농원 내 1653㎡ 규모 친환경 목장에는 연간 50t의 유기농 원유를 생산하는 곳이 있어 직접 축산업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상하농원에 들어간 370억원은 매일유업과 고창군이 분담했다. 상하농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아이디어에 공감해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상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사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매일유업 내부에서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는 사업”이라며 반대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숫자를 따라간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비자와 농가, 지역주민이 만족하면 기업은 저절로 돈을 벌게 된다”며 계획을 밀어붙였다.

모쿠모쿠에서 본 장면이 10년 동안 김 회장의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30년 된 모쿠모쿠는 1987년 축산농가에서 생산한 소시지의 판로 확대를 위해 작은 체험교실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후 축사 견학 프로그램과 돼지들을 말처럼 경주시키는 ‘돼지경주’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됐다. 지금은 연간 3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연매출 600억원을 올리는 ‘관광명소’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김 전 회장이 강조한 ‘상생’의 모습을 목격했다. 매일유업 창업주인 김 전 회장은 “기업은 항상 국민, 농가, 국가가 함께 발전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모쿠모쿠가 그랬다.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지역은 활기를 찾았다. 특산물이 더 많이 팔린 것은 물론이다. 기업은 관광객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축산 농가들은 이곳에서 농작물을 판매했다. 김 회장이 2006년 이곳을 돌아본 뒤 한국으로 돌아와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모쿠모쿠와 업무협약(MOU)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유다. 그는 해외출장길에도 이 ‘6차산업 프로젝트’는 직접 챙겼다.

박재범 상하농원 대표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을 한곳에서 아우르는 모델인 상하농원을 6차산업의 성공사례로 만들 것”이라며 “당장 이익을 내는 것보다 기업이 지역과 상생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허브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매일유업은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모쿠모쿠 농원이 있는 이가지역도 20~30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대부분 도시로 떠난 시골마을이었다. 농원에 사람들이 몰리자 일손이 필요해 고용이 늘기 시작했고 젊은 사람들은 농원에 취직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