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후지필름과 레고, 장수기업의 부활 비결은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둘러보면 대부분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은 전화기라기보다 손안의 작은 컴퓨터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기사를 읽고, TV를 보고, 쇼핑을 한다. 식사를 주문하거나 택시를 부르는 일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 스마트폰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제품도 늘고 있다. 손전등과 카메라, 시계, 알람, 스톱워치, 지도, 녹음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져가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없어진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도 사라지고 있다. 코닥이 그런 기업이다. 디지털 카메라 및 스마트폰 보급이 늘자 필름산업이 붕괴됐다. 이런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코닥은 2012년 결국 파산했다.

반면 경쟁 기업인 후지필름은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절박함으로 혁신에 나섰다. 최근 사상 최대 매출을 냈다. 필름사업을 통해 축적한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화장품 및 제약업체로 탈바꿈한 결과다.

필름 생산의 주재료인 콜라겐과 사진 변색 방지에 사용하던 항산화 성분인 아스타키산틴을 활용해 피부재생 및 노화방지 전문 화장품을 개발했다. 필름 제조를 통해 확보한 자사 고유의 화학합성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항인플루엔자 의약품 개발에 주력해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레고 역시 혁신을 통해 생존한 회사다. 레고는 덴마크 목수가 아내 없이 4남매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창업한 장난감 회사다. 올해로 84년 된 장수 기업이다.

대공황 때와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한 레고는 1990년대 말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레고 블록에 대한 특허권 만료와 닌텐도 등 전자 장난감의 공격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1998년 레고는 덴마크 최고의 혁신가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해 과감한 혁신을 단행했다. 이들은 블록이 레고의 혁신을 방해하기 때문에 블록 생산을 줄이고, 전자 장난감과 온라인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레고 익스플로어를 출시하고, 레고랜드를 오픈하는 등 매년 5개 이상의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고, 2003년 레고의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다.

레고는 이듬해 전략개발 담당자인 크누스토르프를 새 CEO로 발탁, 새로운 혁신을 단행했다. 크누스토르프 CEO는 취임사에서 “레고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그리워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답은 레고의 핵심 제품인 블록이었다. 그는 ‘레고의 시작이자 핵심인 블록으로 돌아가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무조건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보다는 핵심을 지킨 채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는 혁신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이 레고의 블록을 쌓으며 놀다가 홈페이지에 접속해 동영상 및 온라인 게임 등 관련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크누스토르프 취임 3년 만에 레고의 실적은 흑자로 전환했다. 레고 매출은 이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바비 인형을 만드는 마텔을 꺾고 장난감업계 1위에 등극했다.

신규 사업에서 성공한 후지필름과 전통적 핵심 제품을 고수해 부활한 레고는 상반된 성공사례로 보인다. 하지만 두 기업의 성공 요인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2000년 전후로 디지털 세계로 진입하면서 방향성을 잃고 위기에 처했으나 조직에 통용돼오던 타성이나 과거 성공 공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둘째, 해결 방안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조직 내부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핵심 역량과 핵심 기술에 기반을 두고 세상의 변화를 수용했다.

고모리 후지 회장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업에는 진출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레고의 ‘잃어서는 안 되는 핵심 역량과 핵심 제품에 집중하자’는 원칙은 같은 맥락이다. 셋째, 두 기업 모두 ‘늦는 것보다는 빠른 실행과 실패가 낫다’는 원칙 아래 과감하게 추진하고 민첩하게 실행한 게 공통된 주요 성공 요인이다.

이혜숙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