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한국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했다고 한다. 오린 해치 미 상원 재무위원장은 이 문제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연계시켰다. 그는 “의회가 지난해 통과시킨 무역협상촉진권한법(TPA)에는 미국과 맺은 기존 무역 및 투자협정 준수 여부가 TPP 가입의 핵심 기준이라고 명시돼 있다”고 상기시켰다. 한·미 FTA의 완전이행이 한국의 TPP 가입조건이 돼버린 국면이다.

미국이 FTA 이행을 촉구한 배경에는 그간 한국 측의 약속 이행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해치 위원장은 안호영 주미대사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구체적인 항목까지 적시했다. △보험약가 결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투명성 제고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정부기관의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 사용 금지 △금융정보의 해외 전송 규정 등이다. 미국 측이 적시한 항목 중엔 이미 해결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양국 간 의견이 엇갈리는 분야다. 한국은 약속을 이행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 차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약값 문제만 해도 미국은 한국의 건강보험공단이 혁신 신약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국내 제약사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법률시장 개방도 그렇다. 한·미 FTA에 규정된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을 위한 이행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외국로펌 지분을 49% 이하로 제한하면서 미국의 항의를 초래한 바 있다. 과거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에 합의해 놓고 수입 소고기 상자마다 전수조사도 모자라, 작은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수입 물량을 전량 반송했던 한국이다. 이를 기억하는 미국으로선 앞서 지적한 이슈들이 약속 불이행으로 비치는 것이다.

FTA를 맺었으면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이행하는 게 맞다. 더구나 안에서 자꾸 시장을 닫으려고만 하면 오히려 해당 분야의 경쟁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약속 이행은 통상외교의 가장 기본적인 신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