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佛서도 외면당한 '피케티 해법'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을 감명 깊게 읽은 세계 독자들에게 지난 1일은 당혹스런 날이었다. 이날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연 100만유로(약 13억46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세율 75%의 부유세를 폐지했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핵심 해법으로 부자에 대한 연 80% 부유세 부과를 주장했다. 같은 날 피케티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수여하기로 한 프랑스 최고훈장 레지옹 드뇌르의 수상을 거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프랑스 정부의 부유세 철회에 대한 불편한 심경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폐지된 프랑스 부유세 세율과 ‘21세기 자본’의 부유세 세율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피케티는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선거캠프의 경제자문을 맡았고 2012년에도 올랑드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선언을 했다. 올랑드 대통령도 취임 당시 “나는 금융자본과 부자의 적”이라며 갖가지 논란에도 부유세 도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부자들의 탈출이 시작되며 올랑드 대통령은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2013년 벨기에 시민권을 신청한 프랑스 자산가는 전년 대비 두 배로 늘었다. 프랑스의 금융 엘리트들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런던의 고급 오피스텔 가격도 올랐다. 지난해 부유세로 거둔 세금이 1억6000만유로로 예상치(2억1000만유로)에 크게 못 미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경제는 올랑드 대통령 집권 이후 두 자릿수 실업률과 0%대 성장률에 갇혀 있다. 지난해 말 실업자 수는 35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유세는 빈부격차 해소의 해법은커녕 기업 투자와 경제 활력 저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21세기 자본’이 폭넓은 인기를 끌며 피케티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부유세가 빈부격차를 해결할 ‘한 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부유세를 폐지한 그의 조국 프랑스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던 지난해 피케티 신드롬을 되돌아보며 한국 지성계도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노경목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