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영업제한 위법] "대형마트 의무휴업, 전통시장에 도움 안되고 소비자 불편 초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완화될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행정8부는 12일 롯데쇼핑 이마트 등 6개 유통업체가 서울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뚜렷하지 않은 반면 소비자 선택권은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중소 상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판결에서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전통시장 환경부터 개선해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 규제는 2012년 3월 처음 시행됐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와 롯데슈퍼 등 SSM은 월 1~2회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휴업일을 일요일이나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규제를 강화한 새로운 법이 시행됐다.

이 같은 규제는 지난 3년간 시행 과정에서 큰 논란을 낳았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에게 손해를 입히고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면서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논란의 주된 내용이었다.

연세대 경제학부의 정진욱·최윤정 교수는 지난해 2월 발표한 ‘대형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 논문에서 대형마트 영업 규제로 연간 소비가 2조원 이상 줄어든다고 추산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과 협력사 매출이 최근 2년간 2조원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맞벌이 부부는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렵고 아이가 있는 가정은 편의시설이 열악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구매 환경을 개선해 소비자들이 모여들도록 해야 한다”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지정해 소비자 선택권을 가로막은 처분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가 “의무휴업일 지정 등으로 대형마트 매출 감소분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소상인, 전통시장의 매출 증대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것과는 상반되는 시각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영업규제 영향으로 매출이 2년 넘게 감소하고 있다”며 “판결을 계기로 규제가 완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는 “소비자 주권도 중요하지만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이 더 소중한 가치”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가처분 인용되면 의무휴업 해제

이번 법원 판결에 따라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해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소송을 제기한 유통업체 중 성동구에 점포를 두고 있는 기업이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인용 결정을 받게 되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면 동대문구는 사정이 다르다. 옛 유통산업발전법에 근거해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는 성동구와 달리 동대문구는 현행법에 따라 규제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옛 유통산업발전법에 관한 것이어서 동대문구에 있는 점포는 영업규제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유통업체들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진행 중인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고법에서는 현재 비슷한 소송이 8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법리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재판부는 영업규제를 받는 점포들이 법률상 대형마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를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 점포는 점원이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대로라면 국내에는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 등을 제외하곤 사실상 대형마트에 해당하는 점포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