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8도선 획정 비밀과 역사의 아이러니
일반인에겐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조지 링컨 준장은 38도선 획정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런데 최근 맥아더 사령관의 측근이던 에드워드 로니 예비역 중장의 회고록 ‘운명의 1도(一度)’와 육성증언이 이 결정 과정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이미 한반도에 진입한 소련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폭이 좁아 방어에 많은 병력이 필요치 않은 북위 39도선이 처음에 제시됐다. 그런데 링컨 장군이 저명한 지정학자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예일대 교수의 유작 ‘평화의 지리학’(1944)에 나온 ‘38도선 논리’에 따라 1도를 내려서 정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증언이다.

스파이크먼,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학부에서 들은 ‘국제관계론’ 수업에서 지정학을 배울 때 대륙중심부(Heartland)론을 주장한 매킨더, 반대로 해양권력론을 얘기한 마한 제독 등과 함께 언급된 학자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 지정학의 대가로서 1943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다. 그는 “주변지역을 장악하는 자는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운명을 지배한다”는 주변지역이론(Rimland theory)을 주창하며 대륙중심부와 주변지역의 통합을 막는 것이 미국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의 논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새로운 세계전략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기에 그는 ‘봉쇄정책의 대부’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38도선 가설은 책의 핵심 내용도 아니었고 군사분계선을 정하는 데 적절한 논리도 아니었다. 그가 책에서 얘기한 것은 그저 인류역사에서 38도선 북쪽에서 중요인물과 사건의 90%가 발생했다는 것이니, 만약 링컨이 그 설명을 인용하면서 38도선을 정했다면 실로 허망한 일이다. ‘평화의 지리학’은 스파이크먼 사후에 출간됐다. 만약 스파이크먼이 자신 때문에 38도선이 책정됐다는 것을 저승에서 알았다면 매우 화를 냈을 것 같다. 로니는 회고록에서 만약 원안대로 39도선을 유지했다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며, 남침을 방어하기에도 유리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진하게 피력했다.

복기해보면 39도선은 38도선보다 훨씬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물론 39도선으로 설정됐어도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집행한 6·25전쟁을 막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한반도 공산화 집념은 위도 1도 차이 정도가 막을 성격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링컨 준장의 즉흥적인 판단이 38선 분할의 결정적 요소였다고 결론 내리기도 애매하다. 더 복잡한 결정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스파이크먼 논리의 오용(誤用)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스파이크먼은 교수 시절 지리학적 무식을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지정학적 논리를 통해 세계를 이해시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파이크먼은 자신의 논리가 한반도에서 이렇게 오용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허망한 에피소드를 알려준 로니는 6·25전쟁 발발을 맥아더 사령관에게 첫 대면 보고했고, 인천상륙작전의 입안자 중 한 사람이며,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 작전 등에 참여한 6·25전쟁의 큰 공로자다. 전후에는 한미연합사령부 전신인 한미1군단 초대사령관을 지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한·미 6·25전쟁의 두 영웅인 백선엽 장군(94)과 로니 장군(97)의 만남’을 정전협정 61주년과 로니 장군의 회고록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마련했다. 두 사람은 지난 28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새 책 출간과 이런 이벤트가 광복 후 한반도 상황과 6·25전쟁, 그리고 평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강규형 < 명지대 현대사 기록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