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빙벽등반편) 설악산 토왕성폭포 / 클라이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토왕을 오르지 않고 빙벽을 말하지 마라”
[김성률 기자] 설악산 소공원매표소를 출발하여 세 시간만에 토왕성폭포 등반이 시작되는 Y계곡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명이 걷히고 있었다. 120M 자일, 15개의 아이스스크류, 아이스바일, 크램폰 등으로 20킬로그램도 더 나갈 것 같은 배낭을 메고 미끄러운 어프로치를 끝내니 내의는 벌써 땀으로 젖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장비를 착용하면서 기자의 마음은 조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빙벽등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토왕성폭포(이하 토왕폭)의 등반이 곧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취재팀에 며칠 앞서 1월21일에는 서울시청산악회 암벽팀(이하 시암팀) 6명으로 구성된 등반팀이 토왕등반에 도전했으나, 대설특보가 내리고 눈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간신히 탈출했다는 소식을 YTN뉴스로 생생히 들은 바 있어 상단과 중단 그리고 하단으로 구성되어 총길이가 무려 350미터에 이르는 수직의 빙벽 토왕폭을 과연 완등할 수 있을지 저으기 걱정까지 되었다.

시암팀의 2013년도 등반대장인 김기성 클라이머에게 등반 당시 토왕폭의 상황을 물어보니 “등반팀은 시암팀의 정경수, 신순일, 김기성, 표기승, 보라매암장의 암장지기이도 한 오은자, 5.12대 클라이머인 송기승 대장 등 쟁쟁한 클라이머들로 구성되었다. 오은자 클라이머가 하단을 가볍게 선등하고 중단을 거침없이 등반하여 정경수 클라이머가 상단폭포 약 1/5을 등반했을 무렵,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코스를 거의 살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대피지시를 내리기 위해 토왕폭 하단까지 출동했고 이제 하단폭포를 막 벗어나던 김기성 대장에게 전달되어 가까스로 폭설을 뚫고 어렵게 탈출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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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년 토왕폭등반대회에 출전하는 등 실력과 기량이 출중한 시암팀에 비하자면 취재팀의 경력은 초라하다할만했다. 취재팀은 5명으로, 광운총동문산악회의 이동열, 정용걸 대원과 황성호 클라이머, 기자 그리고 선등은 인수봉 건양길의 개척자인 함기철 대장이 맡았다. 5명중 4명은 토왕폭 초등, 선등을 서기로 한 함 대장은 올해 육순이 넘었지만 온사이트로 토왕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 주 전 토왕폭을 완등한 베테랑 황성호 클라이머가 동행을 해주기로 한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었다.

Y계곡에서 짧은 프리클라이밍으로 10여 미터의 빙벽을 등반하고 약 30~40미터를 걸어 올라가 하단폭포로 진입한다. 이내 시야에 들어온 토왕폭 하단에는 이미 5명으로 구성된 앞팀의 등반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물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여명이 트일 때, 아마도 수십 번은 토왕폭을 등반했을 것으로 보이는 앞 팀의 선등자는 거침없이 좌측 벽을 등반하여 벽너머로 사라진 후 멀리서 완료를 외쳤다. 오랜 빙벽등반 경험이 있지만 공교롭게 토왕등반과는 인연이 없던 함기철 대장은 아이스스크류 13개를 하네스에 차고 천천히 우측벽으로 붙어 등반을 시작한다.

빌레이 확보지점에서 약 10여 미터를 직상등반한 함 대장은 '아이스스크류' 한 개를 설치하고 우측의 10미터도 넘는 고드름을 피해 좌측으로 트래버스 한 다음 마치 거대한 버섯처럼 생긴 고드름 좌측에 다시 한 개의 아이스 스크류를 박고 완전히 왼쪽 벽으로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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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스크류(ice screw)는 얼음이나 단단한 눈에 쓰이는 하켄의 일종으로 암벽등반으로 치자면 볼트와 같은 확보물의 역할을 한다. 완전하게 박힌 아이스스크류는 안전하지만 돌출부이거나 불안정한 얼음에 설치된 아이스스크류는 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얼음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속에 공기가 들어있는 얼음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확보용으로 설치된 아이스스크류에는 무리한 힘으로 매달리지 않는 것이 좋다. 역시 얼음덩어리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수직벽 등반을 끝내고 벽 너머로 넘어간 함 대장으로부터 무전기를 통해 완료 신호가 떨어졌다.

취재팀은 등반속도를 내기 위해서 황성호 클라이머가 함기철 대장이 설치해 놓은 아이스스크류를 이용해서 다시 선등을 하여 두 명이 신속히 등반 할 수 있도록 했다. 40대 파워의 황성호 클라이머는 역시 거침없이 신속한 속도로 함 대장의 뒤를 이어 등반을 이어나갔고 이어서 정용걸 - 기자 - 이동열 클라이머의 순서로 등반을 했다.

우리 팀 뒤로도 3명 내외의 팀으로 구성된 등반팀이 도착하여 하단 폭포 좌측으로 선등이 계속 이어진다. 밑에서 등반을 기다리고 있는 클라이머의 머리 위로 때로는 주먹만한, 더러는 수박만한 낙빙이 “씨융~” 포탄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빙벽등반사고를 보면 인공빙장에서 자일을 걸러 올라갔다가 부주의로 추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역시 선등자가 등반중인 얼음판이 통채로 떨어져서 추락하는 경우와 낙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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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낙빙에 팔다리가 맞으면 병원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통증이 오며 심하면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낙빙에 안면부를 맞게 되면 더욱 치명적이다. 치아가 부러지거나 얼굴뼈에 손상이 가기도 하고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낙빙은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즉 빙벽아래에서는 등반자의 등반모습을 항시 주시해야 한다. 낙빙이 떨어지면 날아오는 얼음을 피해야 한다. 등반중에 낙빙이 떨어지면 맞는 한이 있더라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안면부에 직접 얼음이 맞는 것을 피하고 배낭이나 헬멧 등에 맞게 하여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이다.

낙빙을 조심해야 하기는 하지만 빙벽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는 그것을 극복해야 할 하나의 대상으로 여길 뿐 낙빙 때문에 빙벽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더러 낙빙 등 빙벽등반의 위험성 때문에 아예 빙벽등반을 시작도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런 생각이라면 위험이 따르는 등반보다는 십자수나 뜨개질이 더욱 적절한 취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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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 하단폭의 길이는 약 100미터로 경사는 약 70~90도에 이른다. 아래에서 보이는 수직벽 넘어서도 다소 완만해지기는 하지만 등반이 계속 어지기 때문에 지구력이 필요하다. 기자가 직접 등반해 본 토왕 하단은 길이 약 60미터의 구곡폭포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다. 전면부 약 60미터는 거의 수직벽으로 이루어지고 강빙이어서 지구력과 함께 체력의 안배도 필요하다.

수직벽을 넘어 완만한 경사의 빙벽을 등반해서 올라가니 드디어 확보지점.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확보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토왕폭 중단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처음 보는 이에게는 위압감과 공포심을 주기 충분한 높이 약 130미터, 경사는 거의 90도 직각에 이르는 국내최장의 빙벽 토왕폭 상단이 장엄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등반이 이어지는 토왕폭 중단은 거리 약 120미터에 40~60도의 완만한 각도를 이루고 있다. 취재팀은 함기철 대장이 중단의 좌측을 등반하며 깔아놓은 자일을 따라 등강기 등반을 했다. 토왕 중단은 눈이 많이 내리면 자일 없이도 등반을 하기도 한다는데 위험성은 높지 않지만 눈이 많이 쌓여서인지 고도를 높여갈수록 숨이 가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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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 폭포 확보지점으로부터 한 피치 등반을 마친 다음, 취재팀은 하강루트에 무거운 배낭을 데포(depot /등반하는 루트에 미리 일시적으로 장비나 식량 등을 보관하기 위하여 설치한 장소)시켜놓고 물과 간단한 비상식량만 지참하기로 했다.

데포지점에서 다시 상단 폭포의 우측으로 사선등반을 이어간 함 대장은 상단폭포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지점에 확보물을 설치하고 대기상태에 들어간다. 상단폭포에는 이미 6명 정도의 클라이머가 등반중인데 이들을 그대로 뒤따라 선등을 하다가는 낙빙 때문에 위험에 빠질 수 있어 어느 정도 등반이 마무리된 다음에 출발하려는 것이다.

기자도 확보지점까지 등반을 마친 다음 토왕폭 상단폭포의 바로 아래에서 폭포를 올려다보았다. 수직부분만 약 100미터에 달하는 폭포는 멀리서 볼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과연 이 거대한 벽을 바일과 크램폰만으로 찍어가면서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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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토왕폭 빙벽등반은 체력과 기술, 담력을 골고루 필요로 하는 코스다. 토왕폭이 초등된 것은 불과 38년 전인 1977년도로, 크로니산악회의 박영배가 주인공이었다. 초등 당시 등반소요시간은 무려 13일에 이르렀다. 이후 토왕폭 등반은 대한민국 산악인의 자존심을 건 경연장이 되다시피 하며 매년 새로운 기록을 쏟아내게 된다.

1978년에는 악우회의 윤대표와 손칠규 씨가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1박2일 등반기록을 세우며 통산 세 번째 완등에 성공한다. 악우회는 또 그해 12시간 30분만에 토왕을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다.

초등 7년만인 1984년도에는 청주대학교 산악부가 6시간 15분만에 상단과 하단 등반을 모두 마치고 '토왕폭 당일등반'시대를 열게 된다. 빙벽등반기술의 진보와 함께 얼음을 깎고 등반하는 스텝커팅방식이 아니라 아이젠과 아이스바일을 이용한 수직등반으로 등반방식이 변모한 덕분이었다. 또한 등반장비가 현대화되면서 '허밍버드'라는 피켈과 지금도 드물게 사용되고 있는 '푸트팡'이라는 아이젠 그리고 파이프스크류와 스나그와 같은 확보물이 등장하며 등반시간을 크게 단축시키는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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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도에는 무학산악회의 이태식 씨가 토왕폭을 단독등반하여 산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해 토왕골야영장에서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하며 비운의 산악인이 되고 말았다. 같은 해 철암산악회의 이종관, 정병모 조는 다시 5시간 55분만에 토왕폭을 등반하며 다시 최단시간등반 기록을 세운다.

1985년도에는 드디어 여성산악인들도 토왕폭을 접수한다. 청화산악회였다. 그러나 선등을 선 것은 아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토왕폭에서 여성선등의 기록을 남긴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4년도 샤모니클럽의 김점숙이었다. 그는 다음해에 단독등반을 해내며 대단한 관심을 모으기도 한 현역 클라이머이기도 하다.

1986년도에는 이종관, 정병모 조가 하루에 2회 등반을 해내며 토왕폭 등반은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든다. 이들의 등반시간은 약 3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같은 해 인천교대 산악부의 신동걸 씨는 자일 없이 프리 클라이밍 방식으로 등반을 마쳐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종관 씨도 2시간대에 등반을 마치는 기록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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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도에는 정승권 씨와 정병모 씨가 동시에 단독으로 토왕폭을 오르는 색다른 시도를 하여 2시간대에 등반을 완료한다. 1989년도에 토왕폭 등반시간은 드디어 1시간 45분으로 1시간 대에 등반을 하는 놀라운 기록이 세워졌다. 경동고 출신으로 산비둘기산악회에서 활동하던 유학재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기록은 깨어지라고 있는 것일까? 1993년, '토왕성 표범'으로 불리는 강희윤 씨가 1시간 11분만에 토왕을 완등하는 기염을 토한다. 과연 1시간 이내 토왕폭 등반도 가능할 것인가? 표범은 멈추지 않았다. 강희윤은 다음해인 1994년 토왕폭을 37여분만에 프리 솔로로 등빈하여 토왕폭 무한경쟁시대에 마침표를 찍고야 만다.

드디어 함기철 대장이 토왕폭 중의 토왕폭이라고 할 수 있는 상단폭포의 하단을 출발한다. 수직벽이 시작되는 곳에 첫 아이스스크류를 박은 함 대장은 이어서 약 10여미터를 등반하여 두 번째 스크류를 설치했고 다시 6~8미터 간격으로 아이스스크류를 설치했는데 상단폭포 상단 1/3 지점, 두 세 사람이 서면 꽉 차는 비좁은 테라스까지 진출하기에는 스크류가 두어 개 부족했다. 부득이 함 대장이 최종적으로 진출한 지점에 아이스스크류로 확보물을 설치하고 황성호 클라이머가 아래쪽의 아이스스크류를 회수하여 올라가서 등반을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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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선등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암벽선등경험이 풍부한 황 클라이머는 40대의 장년답게 힘차게 등반을 이어가서 취재팀은 테라스까지 안전하게 진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단 테라스에서는 약 20여 미터의 오버행성 직상 구간을 지나 다시 20여 미터의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등반을 끝내면 드디어 토왕폭 등반이 완료된다.

네 번째로 등반을 시작한 기자가 느끼기에 토왕의 수직벽은 역시 남다른 데가 있었다. 난이도로는 대승폭포와 소승폭포가 더 어렵다고는 하지만 위용에 있어서는 역시 발군의 토왕폭포답게 추운 눈보라에 벼려진 얼음덩어리는 가히 강렬했고 그에 못지않게 위에서 떨어지는 낙빙의 위력도 대단했다.

주먹만한 낙빙을 헬멧 위로 맞았는데도 골이 한동안 띵할 정도였다. 내려찍은 바일에 맞은 낙빙조각은 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약 삼십여 미터 정도를 쉬지 않고 등반하자 벌써 팔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체력소모가 적은 N바디로 등반한다고는 하지만 수직의 직벽에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전체 팀의 등반에 지장을 주지 않고 조금이라도 등반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테라스까지 진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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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등반을 위한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 이때 시계는 이미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안전한 등반을 위해서라면 이곳에서 하강하여야 마땅하다. 일몰시간이 두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선등자도 온사이트 등반이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토왕폭 하강은 최소 60미터 이상의 거리를 네 번이나 하강해야 하는데 고정하강링이 설치된 것도 아니어서 더욱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등반팀 중 누구도 탈출하자거나 그만 내려가자는 사람은 없다.

사실 연중 토왕폭 등반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토왕폭이 개방되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반 정도. 영동지방에 속하는 토왕폭 지역은 의외로 얼음이 빨리 녹아 2월초만 지나도 등반이 위험하거나 어려운 상태가 된다. 게다가 팀워크도 맞아야 하고 등반일자를 조정해야 하는가 하면 빙장허가신청 등 해결해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등반기회를 잡기가 간단치 않은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는 관계로 마지막 직벽구간은 등반경험이 있는 황성호 클라이머가 맡고 함 대장은 말번을 맡아주기로 했다. 이 구간을 첫 선등하는 황 클라이머는 두려움 없이 바일을 찍으며 신속하게 상단을 통과한다. 토왕 첫 선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바일과 크램폰을 찍으며 등반하는 황 클라이머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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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난다. 무전기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될 것을 우려한 등반팀은 선등자와 말번 무전기만 켜놓은 상태로 여분의 무전기 2대는 휴대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지막 구간 선등을 맡은 황 클라이머는 무전기를 켜놓지 않아 빌레이어와의 무전교신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선등자와 빌레이어와는 사전에 등반방식에 대한 의견교환을 나누지 못해 엉뚱한 일이 발생한다.

정상적인 등반이라면 빌레이어는 등강기 등반을 하면서 자일을 한 동 달고 올라가 3번과 4번 등반자를 동시에 빌레이 보면서 신속하게 등반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빌레이어의 출발을 기다리던 선등자는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일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결국 100미터나 되는 자일을 모두 사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선등 빌레이를 보던 정용걸 클라이머는 부득이 빌레이 등반을 하게 되었다. 결국 기자가 3번으로 등강기 등반을 하게 되었는데 90도가 넘어 약간의 오버행 구간을 통과할 때 느닷없이 위에서 자일이 쏟아져 내려왔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선등팀이 후등자를 조금이라도 빨리 등반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었는데 더 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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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에 이르는 자일은 기자의 등반자일 그리고 아이스바일과 연결한 두 개의 확보줄과 한데 엉키면서 결국 기자는 등반을 하지도 못하고 자일도 풀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빌레이어가 무전기를 켜고 갔기 때문에 선등팀과 후미팀의 무선교신은 가능했다. 함 대장이 던진 자일을 다시 끌어올리라는 지시를 내리고 다시 자일이 올려졌지만 이번에는 기자의 뒷 자일까지 엉켜 그야말로 기자는 그물에 갇힌 기가 막힌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이날 등반의 최대위기라고 할만한 상황이었다. 이때의 시작은 오후 6시 30분경. 이미 해는 져서 완전히 어두워졌고 등반팀은 랜턴을 켜고 등반중이었으며 등반팀 후미의 팀들은 토왕하단에서 모두 철수를 해버린 상태. 짧은 순간, 영화 ‘노스페이스’에서 자일이 짧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토니 쿠르츠가 떠오르기도 했다. 말번에 있던 함기철 대장은 등반이 끝나고 “이러다가 내일 새벽까지 벽에 매달려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자못 심각한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함 대장이 빙벽 아래 약 15미터 지점에서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행동하라”고 격려의 말을 전해왔다. 다시 냉정하게 판단해보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자일을 푸는 것밖에는 없다. 기자가 풀던, 선등자가 하강을 하고 내려와서 풀던, 말번이 올라와서 풀던 누군가는 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다면 자일이 꼬인 곳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기자가 풀어야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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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늦은 것,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대범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에서 던져진 자일의 끝을 찾아 꼬인 곳에 집어넣고 또 다시 80여 미터를 잡아당기고 또 꼬인 곳에 꿰어 자일 풀어내는 실뜨기(?) 작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30~40여분이 흘렀을까? 결국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처럼 꽁꽁 묶였던 자일이 풀러지고 기자는 약간의 오버행 직상 구간을 넘어 토왕 정상 큰 소나무까지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이게 한 선두팀을 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은 황성호, 정용걸 클라이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고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는, 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는 안도와 기쁨과 약간의 허무가 함께 뒤섞인 묘한 감상에 젖게 했다. 등반시간만 약 12시간. 64세에 토왕폭 온사이트 선등을 시도한 함기철 대장은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했고 토왕초등에 도전한 세 명의 클라이머들은 작은 소망을 이뤘다. 그리고 황성호 클라이머는 또 하나의 값진 경험을 하며 통산 네 번째 토왕폭 완등의 기록을 세웠다.

마침내. 토왕정상에 하늘처럼 버티고 선 키 큰 소나무를 바로 보았다. 저 멀리 동해바다 고요히 잠들고 속초의 불빛이 아스라이 펼쳐질 때, 바람도 숨죽이고 내 심장의 고동소리도 멈추던, 세상의 모든 것이 숨죽인 순간. 토왕의 정상에서,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던 그곳에서, 함기철 대장과 황성호, 정용걸, 이동열 등 5명의 등반팀은 모두 토왕과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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