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는 연간 매출 4조4000억원을 올리는 세계 1위 블록완구 업체다. 한국에서도 작년에 1136억원어치나 팔았다. 전년보다 87.5%나 판매량이 늘었다. 그러나 롯데마트의 완구매장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레고가 아니라 ‘통큰 블록’이다. 통큰 블록은 롯데마트가 자체 브랜드(PB)로 파는 유아용 블록 상품이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레고의 듀플로보다 10배나 더 팔렸다.

PB의 질주…레고 추월한 롯데 '통큰블록'

◆PB에 무너지는 전통 강자

PB상품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생산을 위탁한 뒤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상품이다. 잘나가는 제품을 본떠 만드는 대신 싸게 파는 ‘미투(me too) 제품’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이 품질 관리에 나서면서 ‘원조 제품’을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르는 PB상품이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통큰 블록의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9% 늘었다. 롯데마트가 2011년 11월 국내 완구 업체 옥스포드와 제휴해 선보인 이 제품은 레고의 듀플로에 비해 품질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60% 가까이 싼 게 특징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17일 ‘통큰 블록 무적함대’를 출시, 6세 이상 아동용 블록 완구 시장에서도 PB 바람을 일으킨다는 계획이다.

편의점 CU에선 ‘콘소메맛팝콘’이 스낵 부문 매출 1위 품목이다. PB상품인 이 제품이 CU의 스낵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9%다. 전통의 강호인 농심 새우깡(3.6%)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홈플러스에서는 ‘홈플러스 좋은상품우유(1L)’가 같은 용량의 서울우유보다 많이 팔리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 10월24일 PB상품으로 내놓은 ‘반값 홍삼’은 이틀 만에 준비한 물량 2000개가 다 팔리기도 했다.

유통업체 매출에서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이마트 매출 중 PB상품 비중은 2007년 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3%로 높아졌다.

◆중소 제조사, 유통업체에 종속 우려도

PB상품의 최대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PB상품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가 원가 등을 협의해 생산한다. 박유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PB상품은 일반 상품에 비해 원가를 30% 이상 낮출 수 있다” 고 말했다.

‘통큰 블록 무적함대’는 4만9000원으로 레고의 비슷한 상품보다 50% 이상 저렴하다. ‘홈플러스 좋은상품우유(1L)’는 1700원으로 서울우유보다 32% 싸다.

PB상품이 확대되면서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우려도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PB상품은 대부분 중소 제조사가 대형 유통업체의 위탁을 받아 생산한다”며 “유통업체의 요구에 못 이겨 무리하게 원가를 낮춰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상품을 브랜드만 바꿔 PB상품으로 출시, 인기에 편승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