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LG그룹으로 시작된 올 연말 대기업 정기 인사의 특징은 △세대 교체 △학벌 파괴△여성 중용 △홍보전문가의 약진 등으로 요약된다.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불황, 경제민주화 요구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경영진 구성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5일께로 예정된 삼성의 사장단 인사에서도 이 같은 인사 코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세대교체 - 50대 초반 젊은 CEO 전면배치 … "불황 정면돌파"

기업들은 불황 극복을 위해 젊고 공격적인 인재를 전면 배치하고 있다. 기존 경영진이 후선으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인력 구조조정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LG그룹이 대표적이다. 1997년부터 구본무 회장을 보좌해온 강유식 (주)LG 부회장(64)이 LG경영개발원 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53세의 조준호 사장이 전면에 부상했다. 조 사장은 LG그룹 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LG그룹의 대표적인 장수 CEO인 김반석 LG화학 부회장(63)도 11년 만에 대표이사 직함을 떼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신세계는 계열사 대표 7명을 바꾸는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사장단 인사를 실시했다. 대표 경영자인 구학서 회장(66)이 대외 업무만 맡는 것으로 역할이 조정됐고, 최병렬 이마트 대표(63)와 박건현 신세계백화점 대표(56)는 고문으로 물러났다. 바통을 이어받은 허인철 이마트 대표와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각각 52세와 51세로 뚜렷한 세대 교체를 이뤘다. 이번 인사를 통해 신세계의 대표이사 평균 연령은 57.3세에서 54.9세로, 코오롱은 57.6세에서 55.1세로 낮아졌다.

여성중용 - 여성 CEO 속속 탄생 … 삼성사장단도 女임원 중용 전망

코오롱에선 창사 이래 첫 여성 CEO가 탄생했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이수영 전무(44·사진)가 지난달 30일 인사에서 공동 대표이사 부사장에 발탁됐다. 이 대표는 2005년 부장을 건너뛰고 상무보로 2단계 승진하는 등 차장에서 CEO에 오르는데 단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LG생활건강에서는 이정애 LG생활건강 생활용품사업부 상무(49)가 LG 최초의 공채출신 여성 전무가 됐고, 김희선 더페이스샵 부장도 상무(43)로 승진했다. 김희연 LG디스플레이 IR담당 부장(43), 백영란 LG유플러스 e-Biz 사업담당 부장(48) 등도 각각 상무로 승진하면서 별을 달았다.

이번주 삼성의 사장단 인사에서도 여성이 중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건희 회장이 “여성 중에서도 CEO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 인력을 중시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현재 삼성 내 여성 부사장은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51)과 심수옥 삼성전자 부사장(50) 등이 있다. 이 회장의 둘째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39)이 이번에 사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KT는 2일 인사에서 김은혜 커뮤니케이션실장(41), 오세현 신사업본부장(49), 임수경 글로벌&엔터프라이즈(G&E) 운영총괄(51) 등 여성 인력을 중용했다.

학벌파괴 - 4대 그룹에도 고졸 사장 … 기업 채용에도 고졸 '바람'

LG전자는 지난달 28일 인사에서 36년 넘게 ‘세탁기 외길’을 걸어온 공고 출신의 조성진 부사장(56·사진)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4대 그룹 중에서 고졸 출신이 CEO에 오른 것은 조 사장이 첫 케이스다. 지난 6월 오비맥주 CEO에 오른 장인수 사장(57)도 고졸 신화의 한 사람이다.

이는 고졸자를 배려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은행·공기업 정도에 그쳤던 고졸 공채는 최근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첫 고졸 공채를 실시한 삼성은 지원자들의 자질이 예상외로 우수하자 당초 계획보다 100명 많은 700명을 뽑았다. 한화도 내년부터 고졸 사원들을 위해 사내 기업대학을 만들기로 했다. 한편 올해 신세계 인사에서 새로 임명된 7명의 대표이사 중 서울대 출신은 1명도 없었다.

소통의 시대…홍보 임원들 '약진'

올 연말 대기업 정기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홍보 담당 임원들의 약진이다.

LG그룹에서는 유원 LG경영개발원 상무, 전명우 LG전자 상무, 조갑호 LG화학 상무 등 3명이 전무로 승진했다. LG그룹에서 주요 계열사 홍보 임원 3명이 한꺼번에 승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 김문현 현대중공업 홍보 상무와 김승일 코오롱 홍보 상무도 전무가 됐다. 한솔그룹의 김진만 경영기획실 홍보 담당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이 같은 홍보 임원들의 승진은 최근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공정거래, 동반성장 등의 측면에서 대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내에서는 정치권, 언론 등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홍보 및 대관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요구 확산으로 신사업 추진 등이 위축되자 기업들이 적극적인 대외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등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홍보 업무의 영역이 커지고 있는 것도 홍보 임원들이 부상한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경우 홍보 담당 인력 100여명 가운데 온라인, 국내 언론, 해외 언론 담당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할 정도로 온라인 영역에 대한 홍보가 커지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