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장수는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중국을 처음 통일하는 위업을 이룬 진시황이 죽을 때까지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아다녔다는 일화를 남긴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장수는 축북’이라는 말 대신 ‘장수 리스크’라는 용어가 회자됩니다. ‘장수’와 ‘리스크’의 조합은 얼핏 부조화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생경함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공감이 커진 때문입니다. 준비 없는 장수는 축복이라기보다 인생을 실패로 귀결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인식입니다.

은퇴 후 30년이 흐른 95세 노인의 회한의 사연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화려한 현직을 거친 그는 성공적 삶이었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을 안고 퇴직했습니다. 노인은 여전히 몸이 정정하고 정신도 또렷합니다. 하지만 30년을 무의미하게 소일하다 지친 자신의 모습을 95세 생일에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생의 3분의 1이 남아 있을 줄 은퇴 당시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쏟아냅니다. 그는 어학공부를 결심했습니다. 10년 뒤 105세 생일을 또 후회하며 맞지 않겠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한경의 프리미엄 재테크 섹션 ‘베터 라이프’는 2~3년 전부터 퇴직이 본격화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후를 고민해봤습니다.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생까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차별화되는 집단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첫 세대이자 1960~1990년대 고도성장기의 산전수전을 맨몸으로 돌파한 저력을 체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 준비로 보면 앞서 95세 노인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베이비부머가 많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자신과 주변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동질적이기 때문이지요. 자신보다 나은 삶을 열어주려고 자식교육에 ‘올인’하다 경제적 곤궁에 빠진 분들이 허다합니다.

다행인 점은 몇 발짝 늦긴 했지만 장수리스크에 대비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이순신 장군에게 12척의 배가 남아 있던 것처럼 말이죠. 문제는 맞춤전략과 방법론입니다. 특별한 세대인 만큼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설계는 이전 세대와 달라야 합니다. ‘베터 라이프’가 맥을 짚어드리고자 합니다.

백광엽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