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이란 核 의혹 둘러싼  갈등… 국제 정세  '먹구름'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지난달부터 이란 은행들과의 금융 거래를 끊었다. 유럽연합(EU) 역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에 합류했다. 이에 이란 국민들은 주(駐) 이란 영국대사관을 습격해 영국 국기를 불태우며 제재 조치에 불만을 드러냈다. 핵개발을 둘러싸고 이란과 서방세계 간의 국제 정세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 잇따른 경제 제재

이란의 핵개발 의혹은 과거부터 있었지만 최근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달 초 한 보고서를 내면서부터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지난달 8일 발표한 15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신뢰할 만한 첩보를 바탕으로 볼 때 이란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란이 현재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결론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이 컴퓨터를 활용해 모의 핵폭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 핵무기 구성장치들의 성능을 실험했다는 점 등이 보고서에 적시돼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란 측은 “핵기술은 핵연료 개발을 위한 것이지 무기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다”며 보고서 내용을 반박했다. 알리 아스가르 솔타니에 IAEA 주재 이란 대사도 보고서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즉각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공언했다. 이스라엘은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까지 직접 나서 이란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란을 공격하는 국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우방인 영국도 가세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21일 영국 은행들이 이란 은행들과의 거래를 전면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발표가 있은 직후부터 영국의 모든 기업들은 이란의 중앙은행 등 모든 은행과 거래가 중단됐다. 캐나다 또한 영국 정부처럼 이란 정부와 모든 금융거래를 단절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영국 및 캐나다와 함께 이란에 대한 초강력 금융제재안을 전격 발표한 것은 이란의 핵개발이 핵무기 개발 수준으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기회에 이란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면 중동의 안보지형 전체가 요동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가 이란 중앙은행과의 연계를 제한하거나 중단한 것은 이란의 주수입원인 에너지 수출을 제한 및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란의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은 정부예산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이란 경제의 핵심인데 에너지 대금결제는 이란 중앙은행에서 이뤄지고 있다.

#성난 시위대, 영국 대사관 습격

이란에서는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 조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서방은행과의 거래가 끊기면 이란 기업들의 석유 수출길이 막히고 수입품도 줄어들어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급기야 이란의 과격 시위대는 지난달 29일 영국대사관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대사관에는 이란 과격 청년 수십명이 난입, “영국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며 영국 국기를 불태우고 여왕 초상화를 훼손했다. 대사관 인근에 있는 영국외교관 단지에도 200~300명이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다. 이 사건 직후 영국 정부는 모든 대사관 직원을 이란에서 철수시켰다.

영국대사관 직원들은 시위대 난입 직전 대피,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현지 경찰은 시위대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과 이란 관계는 1988년 인도계 영국 시인 샐먼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발표한 뒤 논란 속에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래 최악상태로 빠져들었다. 루시디 사건 후 영국과 이란은 단교했다 1990년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주(駐) 이란 영국대사관 습격사건에 대해 영국 정부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프랑스, 독일 정부도 비판 성명을 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란 측에 국제협약 준수를 공개적으로 요청해 이란이 수습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이란의 국제적 고립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건 직후 성명에서 “이란 정부가 영국대사관의 직원과 시설을 보호하지 않은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며 이란 정부는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어 “이란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몰고올 파장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영국 정부는 그 같은 사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시위대가 대사관에 난입해 방화하고 기물을 파괴한 것은 이란 정부가 국제적 의무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심각히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유엔 안보리도 습격사건 후 발표한 긴급 성명에서 “안보리 회원국은 이란 시위대에 의한 영국대사관 공격사태를 가장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안보리는 이어 “이란 정부는 외교 및 영사 관련 스태프와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이런 관점에서 국제 의무를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보리의 성명은 중·러를 포함한 15개 회원국의 승인하에 이뤄진 것으로 이란 정부가 외교관 보호에 관한 국제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해 주목된다. 안보리의 성명은 이란 정부가 시위대의 영국대사관 습격사건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정황이 드러날 경우 외교관 보호에 관한 빈협약 위반이 될 것이란 점을 우회적으로 경고한 셈이다.

이란의 핵개발을 두둔했던 러시아도 “이란 정부는 질서 회복을 위한 조치를 신속하게 하고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사태는 일반적으로 국제법의 규범에 반하는 행동”이라면서 이란 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이란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악화될 경우 국제 유가가 상승하는 등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대의 영국대사관 습격 사건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6% 오른 배럴당 99.7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중순 이후 최고가다. 시카고 PFG베스트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이란 핵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대(對)이란 경제제재가 원유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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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는 이스라엘… "이란, 핵 무기 4~5개 만들수 있다"

이란이 핵무기 4~5개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은 아모스 야들린 전 이스라엘 정보부장이 지난달 29일 텔아비브 소재 국가안보연구소에서 열린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이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수적인 만큼 이스라엘은 이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결국 핵무기 제조 방향으로 선회를 결정하는 순간 국제사회가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라면서 “이란이 공개적으로 핵무기 개발 의도를 밝히면 이스라엘은 이 게임에서 혼자가 아니며 더 이상 주요행위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현 상황은 우리보다 나은 작전능력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 및 교류 채널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서방 정보기관은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는지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편, 메이르 다간 전 이스라엘 대외 정보부(모사드) 국장은 이스라엘 TV2 시사 프로그램 ‘우브다’(사실)에 출연해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은 역내 전쟁을 불러올 것이며 시리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등의 개입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쟁이 날 경우 이스라엘의 인명 피해도 높을 것이며 정상적인 생활이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달 초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인명피해는 5만명 혹은 5000명은커녕 500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 핵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도 “IAEA가 지난 7년간 관련 첩보를 취합한 결과 이란이 고농축우라늄(HEU) 기반의 핵폭탄 설계와 제조에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