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더 골(The Goal)’이란 책 이름을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물리학자 출신의 엘리 골드랫 박사가 소설형태로 쓴 이 책은 1984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8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경영서다.2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국내외 유수대학의 MBA(경영대학원석사)과정 등에서 교재로 쓰인다.그가 창시한 제약이론(TOC·Theory of Constraints)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돈을 버는 것’이란 전제 아래 ‘제약’을 파악하고 제거해 성과(output)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처음엔 생산 스케줄링에서 출발해 성과측정을 위한 회계이론과 물류,마케팅,프로젝트관리,문제해결을 위한 사고프로세스(Thinking Process)로까지 확장되며 주요 경영이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골드랫 박사는 한국 언론과는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기업경영도 물리학처럼 어떤 문제를 끝까지 파고 내려가면 하나의 근본원인에 도달하게 된다”며 “이를 제거해야 진정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 기업의 ’핵심제약‘은 조직의 요구(니즈)에 응할 수 있는 경영진의 역량”이라며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프로젝트를 다루는 것은 큰 낭비”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양홍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생산관리전공)가 한경 회의실에서 이스라엘에 있는 그와 화상 연결해 진행했다.

▶TOC의 핵심을 요약하면.

“TOC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하고,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doing what should be done and don‘t do what should not be done)’이다.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를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TOC는 자연과학적 접근법을 사회과학에 적용하려는 시도다.첫 번째 시도는 내가 물리학에서 경영쪽으로 관심을 돌린 후 4년 후에 쓴 책 ‘더 골’에 묘사돼 있다.‘더 골’의 내용은 TOC를 적용한 하나의 사례로 이해돼야 한다.‘더 골’에서 다룬 생산관리는 기업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그래서 신제품개발과 프로젝트관리,판매,마케팅 등으로 적용 분야를 넓혔다.그러자 어떻게 하면 이를 조직 전체적으로 적용해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고 기업이 안정적으로 지속성장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게 됐다.”

▶물리학과 경영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나.

“물리학자들은 어떤 현상을 연구할 때 항상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그리고 비록 첫 번째 질문에 다섯 가지 답이 나오고 각각의 답에서 또다시 다섯 가지 이유가 파생돼 복잡해지더라도 ‘왜’라는 질문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공통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경영도 마찬가지다.생산과 마케팅 제품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있더라도 원인·결과 분석을 해내려 가다 보면 하나의 갈등으로 수렴한다.내가 자연과학에서 또 하나 차용한 것은 모순이 있어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기본 전제는 모든 모순은 우리가 현실에서 잘못된 가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란 것이다.수백 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의 핵심문제에 집중하면 기껏해야 좀 더 나은 ‘타협점’을 찾으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잘못된 가정을 무효화하고 모순을 없애야 획기적인 해법이 나온다.”

▶생산관리에서 출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연이다.그러나 어디에서 시작해도 어차피 다른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제품 생산과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면 ‘제약’은 마케팅이나 엔지니어링 등 다른 부문으로 옮겨간다.또한 생산과정 개선 자체가 회사에 돈을 더 벌어주는 것은 아니다.더 많은 잉여인력을 만들어 낼 뿐이다.그렇다고 사람들을 해고한다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결국 전체적인 조직의 기능부문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해결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TOC에선 병목(Bottleneck·핵심제약)의 제거를 강조한다.컨설팅 경험상 기업들의 가장 큰 병목은 무엇인가.

“물리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보전하려 한다.예를 들어 에너지 보전이나 운동량의 보전 등이다.내가 모든 기업조직에 존재하는,변하지 않는 공통 제약을 찾아내는 데 20년이 걸렸다.어느 조직이나 많은 경영진들이 있다.이는 경영진의 관심이라는 역량(capacity)이 많다는 뜻이다.그런데 경영진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조직 내 요구도 많다.둘을 비교해보자.경영진의 관심에 대한 요구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실제 경영진의 역량보다 많다.무엇이 병목인지 분명해진다.경영진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역량이다.이게 낭비돼서는 안 된다.경영진이 너무 많은 이슈를 한꺼번에 다루면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역량을 죽이는 일이다.”

▶집중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그러나 집중도 무엇을,어떤 순서로 변화시켜야 할지 확실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선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상품개발을 예로 들어보자.통상 개발할 제품을 각각 분석해 얼마의 투자가 필요하고,개발하면 얼마를 벌어들일 것인지 평가한다.그리고 분석결과가 괜찮아 보이면 제품개발에 들어간다.더 많은 제품을 들여다 볼수록 더 많은 멀티태스킹이 생긴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그리고는 옛날 프로젝트들을 다시 점검해본다.다른 모든 프로젝트를 기다리게 만든다.갑자기 할 일이 2배로 늘어난다.세계 주요 기업들을 포함해 이런 사례는 수없이 찾을 수 있다.파레토 법칙에 따르면 20%의 원인이 80%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핵심제약인 경우 1%의 원인이 99%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TOC는 진화·발전해왔다.최근 관심은.

“지난 10년간 어떻게 하면 전통적인 회사를 계속 번창하는 회사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뛰어난 실적을 내고 빠르게 성장하면서 어떤 경제상황에서도 후퇴하지 않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를 위해선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회사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저항 없이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회계와 물류 마케팅은 물론 조직심리도 함께 다뤄야 한다.그간 성과도 있었다.”

▶구체적인 성공사례를 든다면.

“퍼스트솔라라는 회사는 10년 전 40명의 작은 비상장사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순익을 내는 상장회사로 변신했다.인도의 타타철강도 TOC에 바탕을 두고 경영된다.지금은 타타그룹의 다른 계열사로도 확대되고 있다.”

▶TOC가 가장 잘 적용될수 있는 분야는.

“해마다 대답이 바뀐다. 매년 다른 분야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때문이다.TOC는 더 이상 기업에만 국한돼 적용되는 모델이 아니다.싱가포르의 재활감옥과 영국의 병원 개선 등이 모두 TOC를 적용한 사례다.TOC는 모든 일본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의 표준이기도 하다.알다시피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다.그래서 가장 큰 정부 부처가 SOC를 담당하는 국토교통성이다.매년 3만개의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6백만 명이 참여해 일을 한다.모두가 TOC에 따라 진행된다.“

▶2008~2009년과 같은 경제위기 땐 어떤가.

“경기가 나쁠 때가 오히려 TOC를 도입해 시장점유율을 쉽게 높일 수 있는 기회다.한가지 덧붙이면 2008~2009년은 금융위기지 경제위기가 아니었다.그 기간 중 자동차 판매가 확 줄었는데 대부분 신용부문의 돈 줄이 바닥났기 때문이다.이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금융위기가 경제위기로 전환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금융위기다.실제로 소비재,특히 가전 판매량은 별로 줄지 않았다.당시 나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절대로 직원들을 해고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다녔다.경기는 곧 살아난다고 믿었고 실제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다.”

▶저서 ‘초이스’에서 “불운은 현실이 준비부족과 만났을 때”라고 언급한 말이 인상 깊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행운은 기회가 준비와 만났을 때’라고 한 말을 바꾼 것이다.사람들은 쉽게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불운은 단지 그들의 준비부족이 현실과 만났을 때다.기회를 만드는 것도 준비의 일부다.”

▶자동차,반도체,조선업에 집중해 있는 한국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뭔가.

“몇 문장으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그러나 업종별 분석과 해법은 마련돼 있다.현실에서 검증도 됐다.분석해 내려가면 핵심문제에 도달한다는 것은 기본 개념은 같다.그러나 업종마다 구체적인 적용방식은 다르다.나는 지난해 중국에서 3일간 TOC에 대한 세미나를 했다.매년 미국과 남미 중국 인도 일본에 간다.아쉽게도 한국은 명단에서 빠져있다.한국경제신문 독자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다.TOC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뭘 활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으면 TOC정보의 원천인 이스라엘을 방문해라.5일간 무료로 강의해주고 그간 개발된 솔루션을 적용해볼 수 있도록 하겠다.”

▶과거자료에 기초한 전망은 외연확장(extrapolation)일 뿐 이라고 비판했다.그러나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이에 의존해 연간 계획 등을 작성하지 않나.

“맞다.원인·결과에 기초하지 않은 미래전망이 문제다.기업들도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단지 어떻게 하면 단순한 전망을 원인과 결과에 따른 전망으로 바꿀지 잘 모를 뿐이다.내가 지난 7년간 중국에서 사용한 예를 보자.중국경제는 연 9~10% 성장해 왔다.이같은 고성장은 1979년부터 시작됐다.인구가 아무리 많더라도 급격한 성장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노동력 공급이 한계에 달하게 된다.노동력의 수요가 공급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임금이 오른다.중국의 임금상승률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는 경제성장률과 같았지만 지난 20년 동안은 임금상승률이 경제상승률보다 훨씬 가팔랐다.임금이 물가보다 훨씬 빨리 오르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된다.이를 써야 하는 압박이 생긴다.근데 돈을 쓸 데가 없어지면 다시 물가가 급등한다.사회 불안이 초래된다.이게 원인·결과에 따른 전망이다.내가 중국에서 신뢰를 얻는 것은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7년 전에 그대로 예견했기 때문이다.일단 원인·결과 분석을 하면 동료들은 ‘상식’이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상식’을 활용해야 한다.”

▶적절한 재고수준과 관련한 논쟁들이 있다.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재고수준에 대한 의견은.

“업종에 따라 다르다.더 많은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고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이다.가격상승에 대비하려면 원자재 재고를 늘려도 좋다.그러나 원자재에만 국한돼야 하며 생산과정 내 재고나 완성품 재고로 넘어가면 안 된다.그 이상 나가면 생산과정 내에서 원자재를 특정 용도로 배분하는 게 되고,결과적으로 그것이 필요 없는 것이라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이런 구분이 명확해지면 생산흐름(flow)을 뒷받침할 적정재고가 얼마인가라는 진정한 질문이 시작된다.이는 구체적인 환경에 따라 답을 찾을 수 있다.생산흐름은 시간으로만 재어져선 안되고 일정 시간 내 통과하는 물량(throughput·스루풋)으로 측정돼야 한다.

▶정보기술(IT)의 도입 등으로 재고관리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재고수준은 크게 줄지 않는데.

“TOC를 정확히 적용했다면 그럴 수 없다.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를 보자.도요타 생산방식은 전체 자동차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완제품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재고를 기준으로 본다면 전세계 자동차 재고는 10년 전에 비해 4분의1로 줄었다.물론 도요타 생산방식의 창시자인 오노 다이이치가 생산흐름이란 측면에서 적용했던 방식을 기본가정이 다른 환경에 적용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오노의 기본 가정 중 하나는 다루는 환경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이다.이것은 1년에 한번 정도 꼴로만 신모델이 출시되는 자동차 산업에는 맞다.그러나 같은 개념을 제품수명이 5개월도 채 안 되는 전자제품 조립에 적용한다면 엉망이 될 것이다.개념만 가져다가 해당 산업에 맞도록 메커니즘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내가 쓴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글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아이작 뉴튼이 했던 이 말처럼 내가 누구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제로에서 시작하지 말고 ’거인‘이 만들어 놓은 기반을 이해하고 그것에서 시작해 더 나가야 한다.”

▶TOC와 도요타 방식,델 컴퓨터 방식은 어떻게 연결되나

“델 컴퓨터의 공급사슬은 전적으로 TOC에 기반을 둔 것이다.그들도 인정했다.도요타생산방식와과 TOC는 같은 컨셉트에 기반을 둔 것이다.바탕은 포드의 흐름작업 방식이다.오노는 흐름이라는 컨셉트를 또 하나의 다른 환경에 적용했고 나는 그들의 성과를 가져다가 더 많은 산업 군에 적용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든 것이다.TOC와 도요타 생산방식은 흐름이라는 같은 개념을 적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공통점이 있다.”

▶끝으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공급업체부터 고객까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다.이를 어떻게 찾고 적용하느냐는 결국 ’상식‘에 충실하면 된다.”

만난 사람=양홍석 서울대 교수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앨리 골드랫은…

엘리 골드랫(Eliyahu Goldratt · 63)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이학사를,바일란대에서 물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자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제조업 공장을 경영하던 한 지인으로부터 생산 스케줄링과 관련한 문제를 듣고,물리학적인 지식과 아이디어를 활용해 해법을 찾아낸다. 이 과정을 비즈니스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 '더 골(The Goal)'이다.

이 책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제약이론(TOC)은 제너럴일렉트릭(GE),보잉,필립스,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글로벌 기업에서 다양한 경영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동부그룹,삼성전기,LS산전 등이 도입해 활용했다.

저서로는 '더 골 2(It's Not Luck)''한계를 넘어서(Critical Chain)''초이스(The Choic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