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들 ④ - 어느 대중가요의 방송불가 사연
'다 거짓말이야/다 그친 다음에도/더 거친 말들을/내게로 또 다시 돌아와 달라고/너에게 화를 내고 싶었어/말이 없는 벙어리/피해망상 고집덩어리/이런 나라도 너만은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약속할게'

2009년 11월 KBS 방송심의위원회는 가수 케이윌의 신곡 '최면'에 방송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유는 노랫말 중에 쓰인 한 단어가 문제였다. '벙어리'란 말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앨범 발매 직후 각종 온라인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던 케이윌 측은 즉각 "장애인를 비하할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을 벙어리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심의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대중가요를 접하는 수많은 시민과 청소년들은 '벙어리'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청각장애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비하용어를 사용할 우려가 있어 이러한 비하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며칠 뒤 한국농아인협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장애인 비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며 "KBS의 방송불가 판정을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차이는 있되 그것이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도 이젠 널리 퍼졌다.

1999년 2월 전부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누구든지 장애인을 비하 · 모욕하거나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영리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장애인의 장애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모욕하거나 비하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조항을 뒀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때론 알면서도 무심코,때론 미처 몰라서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여전히 허다하다.

그런 말들 중엔 '벙어리→언어장애인'를 비롯해 '장님(소경,봉사)→시각장애인,절름발이(절뚝발이)→지체장애인,귀머거리→청각장애인,저능아→지적장애인,난쟁이→성장장애인,앉은뱅이→지체장애인,꼽추→척추장애인' 등이 있다.

사전에서는 이들을 모두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뒷말이 권장 용어)

일반적인 글쓰기라면 당연히 이런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가급적이면 좀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좋다.

이 가운데 '장님/소경/봉사'는 모두 같은 뜻의 단어로,'시각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맹인(盲人)'도 같은 뜻이다. 다만 이는 '시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란 게 차이점이다. 낮잡아 이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소아마비'도 흔히 쓰는 단어인데,이는 어린아이에게 많이 일어나는 운동 기능의 마비를 가리키는 질병 이름이다. 의학용어이며 이 역시 특별히 낮춰 부르는 말은 아니다.

벙어리나 장님이 낮잡아 이르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말 안에는 이들이 다른 말과 어울려 이뤄진 합성어들도 여럿 있다.

이런 경우는 의미가 확장돼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므로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가령 '글벙어리'(글을 읽고 이해는 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나 '벙어리장갑'(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함께 끼게 되어 있는 장갑) '벙어리저금통'(푼돈을 넣어 모으는 데 쓰는 조그마한 저금통. 돈을 넣는 작은 구멍만 있고 꺼내는 구멍이 없으므로,꺼낼 때는 부수어야 한다) 같은 말이 그런 것이다.

또 우리가 흔히 쓰는 '눈뜬장님'이란 말도 비하하는 뜻보다는 새로운 의미로 전의돼 많이 쓰인다. (특히 이 말은 한 단어가 된 말이므로 이를 '눈 뜬 장님' 식으로 띄어 쓰지 말아야 한다.)

'눈뜬장님'은 우선 '눈을 뜨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를 때 쓰는 말이다.

또 '무엇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글을 보고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가령 '그는 자기에게 무엇이 소중한지도 모르는 눈뜬장님이다' '그는 눈뜬장님이어서 아들의 편지를 읽을 수가 없었다' 같은 말에는 굳이 낮잡아 이르는 뜻보다는 합성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담은 말로 쓰인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까막눈이'가 있다. '무엇을 보거나 눈을 뜨고는 있으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을 '청맹과니'라고도 하다.

'글을 보고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말로 문맹(文盲)이라 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