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버튼을 조작하자 '132살'된 축음기에서 가느다란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옛날 영화의 배경에 나옴직한 고풍스러운 음색이었다. "신기하죠? 여기 있는 기계는 모두 작동해요. 기계들이 상하지 않도록 매일 들러 관리하죠."(알리도 브린자리야 바티칸 라디오 박물관장 · 61 · 사진)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시티.매일 수만명의 관광객과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곳이다. 여기에 세계 최초의 자기(마그네틱) 녹음기와 20세기 초 사용된 단파 라디오,축음기 등이 전시돼 있는 '바티칸 라디오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바티칸 라디오는 1935년 교황 피오 11세와 무선통신 발명가 마르코니가 교황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함께 만든 교황청 전용 라디오 방송국이다.

바티칸시티 안쪽 교황의 산책로(바티칸 가든) 한켠에 있는 박물관은 1932년 마르코니가 세계 최초로 초단파 라디오를 실험한 건물이다. 내부에는 1931년 교황이 사용한 마이크와 1935년 바티칸 라디오가 설립됐을 때 사용된 단파 라디오 등 마르코니의 손길이 닿은 옛 기계 180여종이 전시돼 있다. 그가 녹음기를 조작하자 지직대는 잡음과 함께 교황 피오 11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박물관은 1974년부터 바티칸 라디오의 엔지니어로 일해 온 브린자리야 관장이 창고 안의 옛날 기기를 손질해 열었다. 그는 "창고에서 인류의 유산인 마르코니의 작품들이 그대로 묻혀 버리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교황과 마르코니가 교환한 서신들까지 전부 찾아 읽을 정도로 마르코니에 푹 빠져 있다.

브린자리야 관장은 "교황 피오 11세는 전파 통신과 건축 등에 상당한 지식을 갖춰 당시에도 '엔지니어 교황'으로 불렸다"며 "단파 라디오는 특히 전쟁 중 교황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소중한 통신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으로 바티칸 라디오의 메시지를 듣지만,아직도 통신시설이 낙후한 아프리카나 사막 등 오지에서는 단파 라디오가 최고"라고 강조했다. 실제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도 코소보 등에서 통신시설이 끊기자 사람들은 바티칸 라디오의 단파 송수신기를 통해 헤어진 가족에게 안부를 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브린자리야 관장은 "올해는 마르코니가 노벨물리학상을 탄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여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 기계들을 자식처럼 돌봐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 물건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바티칸(이탈리아)=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