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한남대교를 건너면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 출근길에 남쪽으로 강을 건너며 바라보는 관악산이 준엄한 아버지의 모습이라면,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남산은 푸근한 어머니의 품 같다.

늘 그 자리에 넉넉한 자태로 서 있는 남산은 무엇이라도 품을 듯한 그 느낌이 좋다. 그 정상에 우뚝 서 있는 N타워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필자는 타워가 없던 시절에도 사대문에서,혹은 용산 쪽에서 오랜 세월 남산을 바라보며 그 기상을 닮고 싶어 했다.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하면서….그러나 이제는 타워를 보고 절정의 기상과 절제의 기품을 느낀다.

연말로 접어든 요즈음 느닷없이 탑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바이로부터 날아온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을 두바이 쇼크로 보도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바벨탑 신화를 들먹인다. 어려서 수학여행을 다니며 본 우리나라의 탑들은 거의 불탑이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유한한 육신을 대신해 후대의 흠모와 신앙의 대상으로서 세운 것이 불탑의 기원이다. 불탑이 종교적 기원을 담은 데 비해 바벨탑의 신화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노아의 후손들은 물로써 다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야훼를 불신한다. 그리고는 바빌로니아 땅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표현하듯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세운다. 이에 야훼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시켜 멀리 흩어지게 함으로써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켰다.

사막 위의 스키장,초호화 호텔,세계 최고층 빌딩,세계 최대 인공섬 등 세계 최고의 도시를 꿈꾸어 왔던 두바이의 꿈.두바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두바이의 꿈은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화려한 욕망 뒤에 꿈틀거리는 비참함과 그 모순에 대하여.

우리는 "모든 바라는 바를 포기하고 욕심이나 집착을 버릴 때,행복이라는 말을 찾지 않게 될 때,그때 비로소 너의 마음에 행복과 평안이 온다"는 헤르만 헤세의 '행복'이란 시처럼 살 수만은 없다. 살아있는 한 욕망을 버릴 수 없으며,높이 오르고자 하는 경쟁을 그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욕망을 제어하는 절제의 미덕만은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들도 "전염성 강한 탐욕은 국가적 질병"이라고 선언했던 앨런 그리스펀 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오늘도 남산타워가 시야에 들어온다. 굳건히 지반을 딛고 의젓하게 서있는 타워는 절제가 주는 평안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만 같다.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yoonsoo.sim@eko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