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명사였던 '마당놀이'를 보통명사로 바꾼 예술가 부부가 있다. 극단 미추의 연출가 손진책씨(62)와 배우 김성녀씨(59) 부부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풍자와 해학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린 마당놀이를 하나의 공연 장르로 만들었다.

1981년 '허생전'을 통해 세계 초연된 마당놀이는 마당이라는 물리적인 공간 위에 우리 고유의 가(歌),무(舞),극(劇) 등이 버무러진 토종 연희극이다. 첫 공연부터 극단 미추가 공연을 만들고 문화방송이 홍보와 마케팅을 맡았으나 2001년 결별했다. 이후 '마당놀이'는 상표권 분쟁에 휩싸였으나 법원이 '보통명사'라고 판결,미추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은 여러 극단이 경쟁적으로 마당놀이 공연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심청'은 평균 객석 점유율 90%,티켓 판매액 23억여원 등을 기록했고 지금까지 350여만명이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를 찾았다. 마당놀이가 여전히 최고의 인기 공연이라는 의미다. 미추는 26일부터 서울 월드컵경기장 마당놀이 전용극장에서 올린 '이춘풍 난봉기'를 통해 내달 13일이면 30여년 만에 마당놀이 3000회 공연을 맞는다.

손씨는 마당놀이의 성공을 모두 관객 덕분으로 돌렸다. 그는 "서양 연극과 달리 마당놀이는 관객이 없으면 공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씨도 "엄마 손에 이끌려 왔던 어린 손님들이 이제 어른이 돼서 마당놀이를 찾는다"며 "우리는 늙어가는데 관객들은 젊어진다"고 웃었다.

관객들이 마당놀이를 찾는 이유로 손씨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을 꼽았다. 그는 "한국 공연사를 보면 10년 주기로 특정 장르가 생기고 없어지는데 마당놀이가 30여년을 이어져온 것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마당놀이에 있기 때문"이라며 "흥과 멋을 즐기는 한국인의 DNA에 딱 떨어지는 공연 형태가 마당놀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1981년 첫 마당놀이에서 관객들이 원한 것은 신명난 한마당이 아니었다. 손씨는 "초창기에 관객들은 새로운 형식의 공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며 "언로가 막혀 있던 시대에 세상을 실랄하게 풍자했던 것에서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당놀이의 해학과 풍자는 여전하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는 소리장도(笑裏藏刀)라는 말처럼 마당놀이는 '지금,여기'를 한바탕 웃음으로 풀어낸다. 김씨는 "이번 공연에서도 4대강 문제,세종시 문제를 적당히 건들면서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마당놀이만큼 세상과 맞닿아 있는 공연이 없다는 게 이들 부부의 설명.손씨는 "젊은이들이 마당놀이를 찾는 것도 서양 뮤지컬과 달리 마당놀이가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이춘풍전'도 세 번째 올리는 것이지만 주요 대목인 춘풍 처가 옷을 파는 장면은 15년 전과 확 달라졌다. 김씨는 "첫 공연 때는 단순히 춤을 추면서 옷을 팔았지만 이번에는 패션쇼,홈쇼핑 형식 등으로 '버전 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마당놀이하면 일명 '2김1윤'즉,김성녀씨,윤문식씨(66),김종엽씨(62)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의 부인 김성녀씨는 '마당놀이의 여왕'이라 불리며 지금의 마당놀이를 만든 1등공신이다. 손씨는 "여성 국극의 개척자이자 남도잡가의 대가였던 장모(고 박옥진씨)의 배 속에서부터 무대에 서서 그런지 곤충의 더듬이처럼 감을 잡는 탁월한 배우"라고 부인을 추켜세웠다. 이에 대해 김씨는 "30여년 동안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공연의 격을 지켜온 것은 연출자인 남편의 힘"이라고 화답했다.

손씨는 "시대가 원하는 마당놀이를 계속 만들 것"이라며 "저를 포함해 세 배우가 이제 2진으로 물러나야겠지만 관객들은 이들이 나오지 않으면 '정품'공연으로 보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춘풍 난봉기'는 고전소설 《이춘풍전》을 현대적 시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02)747-5161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