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경영권 방어 장치의 하나인 '포이즌 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 수렴에 나섰다고 한다. 포이즌 필은 외부 세력에 의해 경영권 침해가 우려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값에 주식을 인수토록 해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 제도의 도입으로 기업들이 유사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법적 장치의 미비로 인해 외국인 투기자본 등의 적대적 M&A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몇년간 유럽계 자금인 소버린이 SK그룹을,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을, 칼 아이칸이 KT&G를 각각 공격하면서 내로라 하는 기업들조차 곤경에 처했던 점을 감안하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여타 선진국들은 허용하고 있는 포이즌 필 이외의 경영권 방어 장치들을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일본 등의 경우는 대주주들의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주식 1주에 2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도, 단 1주만으로도 주주총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 이사 해임 등에 대해선 더 높은 결의 요건을 두는 초다수결의제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포이즌 필 제도 도입을 위한 요건이 너무 까다로운 점도 문제다. 개정안은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선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대주주 지분이 대체로 20% 안팎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포이즌 필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데 비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상법 개정안은 앞으로 의견조정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실효성을 가진 법이 될 수 있도록 대폭적 보완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 포이즌 필 도입 요건을 완화함은 물론 황금주 등 다른 수단들을 함께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檢討)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는 제도를 선택할 수 있고, 경영권 방어 지원이라는 취지도 달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