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빠진 미국, 실업억제·금융개혁 등 험난

금융위기 초래한 월가 탐욕은 여전히 제어 안돼

지난해 9월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주택가격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맹신이 깨지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믿음도 함께 무너졌다.

리먼의 파산은 글로벌 시장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 세계 증시의 시가총액(시총)은 지난 1년 새 약 4조달러(4900조원)가 증발했다.

그나마 올 3월 이후 글로벌 증시가 랠리를 펼치며 상당 부분 만회를 한 게 이 정도다.

경제위기 이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5조8000억달러 감소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

주요국이 발표한 경기부양책 규모는 약 2조4000억달러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의 경기부양책 규모가 올해는 GDP의 2%, 내년엔 1.6%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리먼 파산 1년,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한 결과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던 경제위기는 수습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 전략'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3분기에 3%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경기침체에 접어든 미국과 유럽은 실업 문제 해결과 내수 촉진이란 힘겨운 숙제를 안게 됐다.

글로벌 경기회복의 견인차로 꼽히는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가들도 선진국에 견줄 만한 경제규모와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직 세계 경제의 메인 엔진으로 떠오르는 데는 역부족이다.

특히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고용시장이 얼마나 빨리 안정을 되찾을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실업 문제의 해결 없인 소비 촉진의 동력을 얻을 수 없고, 만일 고실업률이 계속 유지된다면 내수 중심 성장이란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 목표 달성에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 8월 실업률은 9.7%였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해도 연내 10%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배리 보즈워스 박사는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출구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신호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실업률"이라고 밝혔다.

보즈워스 박사는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나타내다 다시 침체하는 더블 딥 현상을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고,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만큼 신용 시스템도 탄탄하지 않다"면서 FRB가 섣불리 금리 인상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서서히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 경제는 아직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일 유럽위원회(EC)는 독일과 프랑스 등을 제외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올해도 여전히 전년 대비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다른 국가에 비해 제조업 부문이 취약한 영국과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경우엔 예상보다 더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특히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들이 근속연수가 짧은 종업원을 해고하는 경향이 강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의 청년층 실업자는 500만명을 넘었다.

EU 통계국에 따르면 7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청년층 실업률은 19.7%로 올라갔다.

작년 같은 달에 비해 4.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전체 실업률(9.5%)의 두 배를 웃도는 것이다.

에스토니아에선 청년 실업률이 38.4%를 넘었고 스웨덴(27.3%),헝가리(25.8%),아일랜드(25.5%),벨기에(21.6%) 등도 청년 실업이 높다.

더구나 금융위기의 폭풍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월가 금융가의 탐욕 가득찬 치부는 전 세계인들을 분노하고 실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아직까지도 별다른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위기 이후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월가의 고액 보수 관행은 또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분기에 직원들에 대한 보수와 혜택으로 66억달러를 지출해 2년 전보다 34% 많았다.

올 상반기 상위 5개 은행이 직원보수를 위해 유보한 자금은 610억달러로 1년 전의 650억달러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수만명의 직원들이 해고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직원 1인당 지급액은 오히려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수익을 내기 위해 무엇인가 새로운 방법,또는 투기적 수단을 찾는 월가의 본질도 결국 바뀌지 않았다.

AP통신에 따르면 월가 금융사들이 위험도가 높은 모기지 증권을 쪼개 위험도가 낮은 모기지 증권과 섞은 뒤 이를 저위험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생명보험 계약 만료 전에 이를 증권으로 유동화해 매매함으로써 수익을 낼 수 있는 생명보험 유동화 상품을 고안하는 등 월가가 복잡한 파생상품을 동원해 다시 위험한 투자를 조장하려 한다는 지적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먼 파산 1주년을 맞아 14일 뉴욕 페더럴홀에서 한 연설에서 "지난해 경제위기를 초래한 과거의 무모하고 방만한 행동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연설 내내 금융권을 겨냥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불행히도 일부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금융 위기의 폭풍이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금융권은 자기 만족에 빠져서도,국민의 세금이 다시 그들을 구해줄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리먼 사태와 위기 상황을 통해 얻은 교훈을 무시하고 모르는 체하려는 금융회사가 있다"며 "이런 태도는 자신뿐 아니라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금융사 참석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월스트리트가 따뜻하게 대통령을 환대했지만 박수로 연설이 중간에 끊어진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행사가 끝난 후 백악관이 배포한 녹취록은 행사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줬다.

오바마 대통령이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정부 참석자와 의회 참석자들을 소개할 때마다 몇 차례 의례적인 박수가 나왔을 뿐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