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전략경제대화서 경제·외교안보 등 공조 합의

“산 속의 오솔길이라도 계속 다니면 길이 되고, 한동안 다니지 않으면 곧 띠풀이 자라 길을 막는다. (山徑之蹊閒,介然用之而成路. 爲閒不用,則茅塞之矣.)”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간 제1차 전략경제대화 개막연설에서 사서삼경 중 하나인 맹자에 나온 문구를 인용한 말이다.

이번 전략경제대화가 미·중 간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중국의 정신이 담긴 성어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지난달 28일 폐막한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두 나라가 경제 외교안보 군사 기후변화 인권 등 전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키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로써 과거 20세기 미국과 러시아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21세기 들어 미·중 중심의 새로운 G2(주요 2개국)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지난 2006년 12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당시 미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이 중국의 우이 경제 부총리와 함께 창설했던 경제대화가 시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들어 최고위급 대화로 격상되면서 회담 참가자들의 지위도 종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미국 측 주요 대표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개막식에 참석해 미국이 이번 회담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확인시켰다.

중국은 이번 대화에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치산 부총리 등이 이끄는 150명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중국이 이제껏 미국에 파견한 최대 규모다.

초창기였던 부시 행정부 때만 해도 전략경제대화는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미국 측 주장을 중심으로 이뤄졌고,이에 대해 미국의 공세를 중국이 방어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역전됐다.

중국이 국제 사회의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한 가운데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로 인해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미 국채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중국이 거꾸로 미국에 달러 환율 안정과 재정적자 관리를 잘하라는 압력을 넣게 된 것이다.

양측은 폐막 연설을 통해 첫 대화가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21세기를 위한 포괄적이고 긍적적인 협력관계의 기초를 다졌다”고 말했다.

왕치산 부총리는 “더도 말고 덜고 말고 만족스런 성공작(a full success)”이라고 강조했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양국이 달나라 가는 것 빼고는 모든 분야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 기간 내내 휴스턴 로키츠팀의 중국 농구스타 야오밍을 거론하고 농구공을 갖고 다니면서 ‘바스켓(농구) 외교’를 펼쳤다.

그는 자신이 사인한 농구공을 중국 대표단에 선물로 주기도 했다.

또 “새로 부임한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농구팬으로서 야오밍에게 배운 말이 있는데…”라며 “당신이 새로 온 멤버든 오래된 멤버든 간에 서로에게 맞춰갈 시간이 필요하다”는 야오밍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회담과 이번 대화를 통해 야오밍이 말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1970년대초 핑퐁외교로 새로운 미·중관계가 시작됐다면 바스켓 외교는 21세기 세계를 주도할 G2시대를 열고 있는 셈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엇보다 경제 현주소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미국 경제가 바닥을 벗어나 올 하반기에 성장할 것이란 징후들이 있으며,중국 경제는 지난 1분기 바닥을 치고 벌써 반등을 시작했다고 확인했다.

또 경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재정 및 통화확대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유지키로 합의했다.

섣부른 출구전략은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양국은 명분과 실리도 주고 받았다.

미국을 대신해 세계 소비시장이 되어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중국은 내수확대 방침를 약속했다.

중국은 오는 10월 이전 세계무역기구(WTO)에 정부조달협정(GPA) 가입신청서를 제출,조달시장 개방폭을 넓히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이 주요 20개국(G20) 회의,국제통화기금(IMF),금융안정위원회(FSB) 등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키로 했다.

균형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윈-윈(win-win) 게임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에 공동 대응하고,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정국 안정에 공조키로 했다.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비핵화를 달성하자고 재확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서둘러 이행하자는데도 합의했다.

양국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돼온 수단 등 아프리카를 비롯 중동과 중남미 아시아 등의 문제도 양자 대화의 틀에 넣기로 합의했다.

세계를 G2의 체스판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군사교류는 전 부문으로 확대키로 했다.

물론 과제도 남겼다.

미국이 불만을 가져온 위안화 절상 문제는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았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위안화 환율 얘기를 미국 관료들이 꺼냈으나 중국측의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국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양해각서를 맺었지만 정작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명시하진 못했다.

위안화 환율과 달러 가치 안정,온실가스 문제는 앞으로 갈등 요소로 재부상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폐막연설에서 “앞으로 더 중요한 미션은 양측이 얘기한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신장 위구르·티베트 등지의 중국 내 소수 민족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미국 측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세부적인 협의 대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왕광야 중국 외교부 수석 부부장은 28일 미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 대해 ‘절제된 태도’를 보인 데 감사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미국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2차 전략경제대화는 내년 베이징에서 열린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올해 안에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