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임진왜란 때와 같다. 강대국에 언제 먹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 1조달러 수준의 경제력을 3조달러까지 늘려야 한다. "

한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SK그룹 회장을 역임했던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사진)이 6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 명예회장은 30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기업을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위로는 중국이 버티고 있고 아래로는 일본이 지키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며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분발해 국가 전체로 5대 상임이사국 수준의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명예회장은 이어 "더 힘을 길러 20~30년 안에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며 "경제력이 강한 통일국가가 만들어지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이 서로 한국과 동맹을 맺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CEO(최고경영자)들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워 유능한 후배를 키우는 일을 꺼려서는 안 된다"는 주문을 내놨다. 그는 "CEO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좋은 일은 동료나 후배에게 맡기고 궂은 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며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상대에게 경쟁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능력도 키웠다"고 설명했다.

강연을 끝낸 손 명예회장에게 최근 근황을 묻자 "주로 역사공부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손 명예회장은 "역사를 살펴보면 강소국이 기회를 잡아 강대국으로 부상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며 "책을 열심히 보고 직접 역사의 현장을 여행하기도 하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SK 내에서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 가끔씩 경영진들에게 조언을 하는 일만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9일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하계포럼 개회사를 통해 정치권과 강성 노조를 맹비난한 것과 관련해서는 "사회 각 부문이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 좀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며 "모든 기업인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가 강해지기를 바라며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손 명예회장은 1965년 SK의 전신인 선경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직까지 오른 인물로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한다. 2003년에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재계 전체를 이끌기도 했다. SK 분식회계 사태의 책임을 지고 2003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말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복귀했다.

서귀포=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