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9일)에 이어] 생각은 신중하게,결정은 짧고 빠르게 하는 것이 나의 특징.어설픈 답은 안 쓰니만 못하니 차라리 백지로 내고 "잘했어!"라며 덤덤하게 돌아섰는데,현실에서는 무대책이었다. 결과는 낙제.다음 학기를 기다렸다 재시험을 봐야 했다. 당연한 결과인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허탈했다. 밤잠 설치며 공부하고,일할 때도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틈만나면 공부했는데….좀 더 잘해내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그 고생을 또 해야 돼? 여기서 포기해? 한참을 고민했다. 다시할 생각을 하니 고생스러웠던 시간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결론은 '다시 해야지.멋지게 마무리지어야지'였다. 남들은 한번에 척척 잘도 끝내는 데 이게 뭐람,백지를 내고…,으이쿵! 쓸데없는 용기가 화를 부른 것이라며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지만 백지를 내고 나오는 그 순간만은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하하….왜 그랬는지 몰라도 스스로 당당하다고 여겨졌었다. 단순한 여인,그 다음까지 생각했어야지 ㅎㅎ.다시 해야 하는 공부도 공부지만 지금까지 들어간 수업료가 얼마인데….힘겹게 벌어 공부에 투자했는데,한 과목으로 전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졸업을 위해 다음 학기를 기다리는 그 겨울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얼음이 녹고 꽃이 피는 봄.수업료를 추가로 내고 재등록,지난 학기 백지로 냈던 시험지를 꽉꽉 채우며 써내려갔다. 모델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성상 남보다 혜택받고 편하게 산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내가 중간에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고,'백지' 후에는 더더욱 졸업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투정부리듯 시험 고민을 하면 "그거 돈 주면 다 졸업시켜주는 거 아냐~?"라며 물정모르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의 내면 한켠에는 그런 생각에 대한 약간의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절대로 포기 못하죠'였고,실제로 그렇게 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비록 남들보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값진 경험과 추억을 갖게 됐으니 얼마나 대견스럽고 뿌듯한가.

몇 분의 교수님들은 휴대폰과 이메일로 '아주 잘 했어요''이렇게 완벽하게 할 걸 진작 잘하지,시험 아주 잘 봤어요. A 이상 이던 걸'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 당시 졸업에만 급급해 적당히 써내고 아슬아슬하게 졸업했다면 안도의 숨은 쉬었을망정 자존심에 금이 가고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을 것이다. 한숨 고르고 다부지게 준비해 성에 차는 결과를 얻어 졸업하니 내 발걸음도,얼굴에서도 당당함이 배어나왔다. 잘했어,조금 느리면 어때.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더 행복한 거지.가끔 틀에 박힌 일상생활의 반복과 고정돼 있는 머리 속에 조금 고생스럽긴 해도 새로운 것을 입력해주는 일,두뇌 회전과 활력에 좋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