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형 슈퍼마켓(SSM)의 출점 규제와 관련,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을 가이드라인으로 삼기로 한 것은 '정부가 기업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주장해온 SSM 출점허가제와 영업시간 제한이 아닌 개설등록제를 도입하고 유통업체와 영세상인 간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12일 "대형마트 SSM 규제는 WTO 협정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방법을 찾기로 했다"고 밝힌 것은 SSM에 대한 과도한 포퓰리즘적 논의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의원들이 SSM 규제를 위해 발의한 10여가지 입법안이 SSM 출점 자체를 막고 영업시간과 취급상품까지 제한하는 무리한 규제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WTO 서비스협정의 시장접근 제한 금지와 내국인 대우 조항에 위배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영세상인 보호를 명분으로 대형마트 출점을 막았던 지자체들이 최근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SSM 출점이 현행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강화되면 지방자치단체가 등록요건을 까다롭게 적용해 사실상 준허가제가 될 수 있어 유통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김종호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장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한 시장의 업체수를 규제하는 것은 안 된다"며 "다만 교통,환경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조건을 달거나 근로시간 준수 등으로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나라당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노동부 중소기업청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13일 이 문제를 논의한다. 그러나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선 이미 지자체 조례를 통해 비슷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말 당정협의에서 3000㎡ 이상 대규모 점포에만 적용돼 온 개설등록제를 '대규모 점포의 직영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이는 SSM까지 등록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며 각 지자체에 설치되는 '사전조정협의회'에서 주관할 전망이다.

이는 골목상권에 진출하려는 SSM이 설명회를 통해 지역상인들을 설득하고 지역상권은 유통업체의 지역상품 구매,소상공인 육성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받는 선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지자체가 중재하는 방식이다.

한편 유통업이 발달한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점포 출점시 용도지구 성격이나 교통영향평가 등을 통해 규제한다. 프랑스는 매장면적 300㎡ 이상 소매점을 신설할 경우 교통 · 환경영향과 지역 내 유통매장 밀집도 등을 평가해 건축 · 토지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일본은 매장면적 1000㎡ 이상 점포 개설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대형점 출점에 따른 소음과 폐기물 등 교통 · 환경영향을 평가해 출점을 제한하고 있다.

최진석/류시훈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