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우드·강수진을 닮고싶픈 배우 정유미
정유미는 겁먹은 듯 소심한 눈빛의 배우다.

무언가를 말할 때 머뭇거리기 일쑤다.

영화 홍보차 가진 무대 인사에서는 안절부절못하고, 기자 간담회에서는 옆 배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이러한 정유미가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신정원 감독이 연출한 '차우'에서 그는 얼굴에 진흙을 덕지덕지 묻힌 채 땅바닥을 구르고, 애벌레를 씹기도 한다.

무대 인사 때처럼 "뭐라고 말하지…"라며 더듬지도 않는다.

그는 확신에 찬 몸짓과 말로 관객과 소통한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그를 '차우' 개봉(15일)을 앞두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차우'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캐릭터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캐릭터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는가가 분명한 영화면 좋죠.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개의치 않아요. 상대배우가 누군지, 감독이 누군지도 물론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차우'에는 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는 지난 2004년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했다.

그동안 '사랑니'(2005), '가족의 탄생'(2006), '좋지 아니한家'(2007), '네번째 시선'(2008),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등 장르적 특성이나 예술성 짙은 영화들에 참여했다.

상복도 많아 2005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연기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2006)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2006) 등을 받았다.

이스트우드·강수진을 닮고싶픈 배우 정유미
"특별히 예술영화를 고집하진 않아요. 이번 작품은 캐릭터가 독특하고 재밌었지만, 대중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서 참가한 측면도 없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사회가 끝나고 나니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도 나오더라고요. 제가 대중적 취향이 없는 건지.(웃음)"

상복 많은 정유미에게 연기 잘하는 비법을 물었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캐릭터에 맞게 연기하는 걸 고민한다고 말했다.

과연 내가 하는 연기가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점이다.

애벌레를 먹는 장면도 그래서 최근 재촬영했다.

"찍고 나니까 변수란이 맛을 봤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작보고회가 끝나고 후반작업하는 곳을 놀러 갔는데 촬영 감독님이 뭐가 제일 아쉽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애벌레 먹는 장면을 언급했어요. 호기심 많은 변수란이라면 먹지는 않더라도 맛은 봤을 것 같다고 말했죠. 그 말을 하고 이틀 후 일산 구석에 모여 이 장면을 다시 촬영했어요.(웃음)"

그는 자연스럽게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과에 들어가서 연기를 했죠. 재미있고,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끼리 무언가 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제가 오디션을 받고 있고, 장편을 찍고 있더라고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침팬지 전문가인 제인 구달을 꿈꾸는 동물연구가 변수란으로 분했다.

동물과 익숙해지기 위해 그는 모형 동물들을 방에 세워놓았다고 한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 발상이 독특하다.

이러한 모습이 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4차원'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그런 말 들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각자 기준이 있고, 생각하는 게 다를 테니까요."

그는 요즘 방 한쪽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강수진, 비욘세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사진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무어라도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이죠. 잘 알지 못하고, 잡지에서 읽은 게 대부분이지만 일을 즐기면서도 정말 잘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한마디로 멋지게 잘하죠. 그런 분들을 닮고 싶어요."

예순 살에도 배우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평생 배우를 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래에 대해 누가 예단하겠어요. 다만 지금 연기하는 건 너무 좋고, 너무 재미있어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