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초보자들이 늘 겪는 일이 있다. 하도 힘들어 "아직 멀었느냐"라고 물으면 팀 리더는 물론 주위 등산객들까지 "다 왔다"고 답하는 게 그것이다. 그런가 싶어 기운을 내보지만 한참을 가도 여전히 거기가 거긴 듯해 다시 물으면 "진짜 다 왔다" "바로 코앞이다"라고 한다.

기가 막혀도 '진짜'와 '코앞'에 속아 다시 발을 떼야지 안그러고 주저앉으면 정상에 닿을 수 없다. '바로 코앞'이라는 게 실은 마지막 깔딱고개일 때가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인가. '바로 코앞이다'의 영어 표현은 'Just round(around) the corner'다.

코앞인데 그 코가 빤히 보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코너, 곧 모퉁이 근처에 있다는 얘기다. 가까이 있다,멀지 않다는 뜻은 같은데 전달되는 느낌은 다르다. 모퉁이란 게 끊긴 길 내지 막다른 길 같기 일쑤이고 보면 영어식 '코앞'은 한걸음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셈이다.

코너는 돌기 힘들다. 갑자기 나타난 경우는 더하다. 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져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가슴이 무너지는 수도 많다. 그러나 알고 보면 코너는 방향이 바뀌는 곳에 불과하다. 쇼트 트랙의 승부는 코너를 어떻게 도느냐에 달렸다고 하거니와 위험한 만큼 기회도 많은 구간이다.

넘어지지 않고 유연하고 빠르게 잘 돌면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단 그러자면 그동안 달려온 관성이나 타성에서 벗어나고,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낮추고,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다. 비정규직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구조 조정으로 명퇴 당한 사람,불황으로 문 닫은 회사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더이상 갈 수 없는 낭떠러지,도저히 뚫고 지나갈 수 없는 두꺼운 벽 앞에 서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눈앞의 벽이 제아무리 높아 보여도 지레 겁먹고 주저앉거나 돌아서지 말고 용기를 내서 바싹 다가서야 한다. 어쩌면 막힌 줄 알았던 곳 옆으로 몸 하나 간신히 지나갈 만한 길이라도 있을지 모르고 그걸 빠져 나오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길이 펼쳐질 수도 있다.

세상은 냉정하다. 넘어진 자,길 잃은 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한번 쓰러지면 아프기도 하고 다시 넘어질까 두려워 일어서기 무섭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시 한번 주먹 불끈 쥐고 신발끈도 동여맬 일이다. 살아있는 한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Just round the corner!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