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정부군과 접전… ‘제2의 베트남전’ 우려

고대 인도 · 아리아어에서 유래한 '~의 땅'이란 의미의 단어 '스탄'은 서방 세계에는 일종의 '골칫거리'다.

아프간인의 땅, 파크인의 땅이란 뜻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베트남전처럼 '끝이 없는' 수렁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방 세계가 직면한 상대는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탈레반(근본 이슬람주의 정치 · 무장조직)이다.

몇 년 전 아프가니스탄 권좌에서 축출되며 사라진 듯 보였던 탈레반은 최근 파키스탄의 수도 인근까지 진군하며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탈레반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세계가 중앙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 파키스탄 · 탈레반 전면전…대탈출 러시

[Global Issue]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다시 살아나나
탈레반은 미국의 대(對) 아프간 전쟁으로 아프간 권좌에서 축출된 뒤 한동안 뉴스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랬던 탈레반이 최근 이웃 파키스탄에서 급부상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탈취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 과제 1순위로 떠올랐다.

지난 8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60㎞가량 떨어진 스와트(Swat) 지역은 파키스탄-탈레반 간 전면전으로 아비규환의 장이 됐다.

파키스탄 정부군의 총 공세와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아 결사 항전하는 탈레반군, 지역 주민들의 대탈출 등으로 스와트 지역은 전면전 지역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 문제 해결 능력을 국제사회에서 평가받는 상징적인 지역으로 떠올랐다.

파키스탄 정부군은 5일부터 헬리콥터와 탱크 등을 동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6일 미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알 카에다와 그 동맹세력(탈레반)을 격파하는 데 참여하겠다"며 탈레반 척결에 공동 대응키로 전의를 다졌다.

같은 시기 미국을 방문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도 '반(反) 탈레반' 3자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파키스탄 군은 7일에는 화력을 총동원해 탈레반 은신처로 추정되는 건물 등에 집중 포격을 가했으며 스와트 중심도시인 밍고라 진입도 시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 지역의 탈레반 숫자를 7000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소탕을 위해 1만명의 정부군을 투입한 상황이다.

스와트에는 주민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밍고라에서만 수십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

13일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파키스탄 군은 지난달 하순부터 지금까지 난민 130만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정부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1947년 인도 · 파키스탄 분리 이후 단일 규모로는 최대 난민 규모다.

이 와중에 탈레반은 도로를 바위와 나무로 막아 민간인의 피란로를 차단하며 민간인을 인질로 삼아 결사 항전하고 있다.

⊙ 파키스탄 '접수'까지 노린 탈레반

오랫동안 외부 세계에 생소했던 스와트 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방세계가 충돌하게 된 것은 지난 2월 탈레반이 이 지역을 접수하면서부터다.

2년여간 군사작전을 펴고도 탈레반을 축출하지 못한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이 요구한 대로 이 지역을 넘겨주며 휴전을 선택하면서 사태는 꼬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군에 비해 정규군의 전투 경험이 없어 퇴각을 반복하다가 결국 탈레반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와트 지역을 점령한 탈레반은 그러나 세력을 확장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근 100㎞ 지점인 부네르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탈레반의 부상에 가장 놀란 것은 미국이다.

'제2의 베트남'이라 불리는 아프간에서 고군분투하던 미국으로선 자칫 배후 보급기지가 차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더욱이 파키스탄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탈레반에 넘어갈 경우 사태는 통제 불능으로 빠질 수도 있다.

이미 파키스탄에 120억달러를 원조한 미국으로선 파키스탄이 잘못되면 베트남전 패배, 이란 호메이니 정권 등장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대형 대외정책 실패 기록을 남기게 된다.

⊙ 사령관 교체 등 강경하게 대응하는 미국

부라부랴 미국은 파키스탄에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주 이슬라마바드 부근의 탈레반 장악 지역인 부네르와 디르로 진격했고, 스와트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미국은 이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이자 나토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관인 데이비드 매키어넌 대장을 11일 임명 11개월 만에 전격 경질하고 특수전 사령관 출신인 스탠리 매크리스털 중장을 임명했다.

매키어넌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지상작전을 총지휘했던 인물이다.

전쟁 중 미국이 군 사령관을 경질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이후 처음이다.

신임 매크리스털 중장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와 이라크의 알 카에다 지도자 알 자르카위 사살에 큰 공을 세웠다.

또 소규모 특수정예부대를 동원한 대(對)게릴라전에 정통하다.

미국은 아프간 주둔 미군 최고 사령관을 교체하면서 전략을 단순한 '병력 증강'에서 현지 군벌과 민병대 활용 등을 활용한 비(非)전통적 전술로 바꿨다.

반드시 이 지역에서 승리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뉴욕타임스는 "알 카에다가 핵심 역량을 파키스탄에 쏟아붓고 있다"며 "탈레반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준동하게 된 배경에는 알 카에다 대원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파키스탄 내 여론이 무능하고 부패한 현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탈레반과의 전쟁도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란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강하기 때문에 민병대를 활용한 전술을 수행하기도 쉽지 않다.

거기다 "파키스탄 군 간부 상당수가 탈레반에 동조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부 국민이 탈레반에 동정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국과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토벌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작전의 성공은 가늠하기 힘들다.

앞으로 2~3주가 탈레반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사라질지, 아니면 파키스탄이 '제2의 베트남''제2의 쿠바'가 될지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