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선 연간 55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빅6'만 살아남을 것이다. "(2008년 12월6일)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최고경영자(CEO)가 5개월 전 그가 밝힌 '예언'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피아트는 3일 GM유럽의 '오펠' 브랜드를 조만간 인수한 뒤 피아트 그룹에서 자동차 부문을 떼어내 크라이슬러,GM유럽을 통합한 새로운 자동차회사로 재탄생하겠다는 구상을 깜짝 발표했다.

◆'자동차 공룡'의 꿈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불과 5년 전 파산위기에 몰렸던 이탈리아의 작은 자동차업체가 미 '빅3'의 몰락을 틈타 '자동차 공룡'을 꿈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계 판매 10위에 그쳤던 피아트는 GM의 자회사인 GM유럽의 오펠 브랜드 등 부분인수와 크라이슬러와의 제휴를 통해 세계 2위 업체로 급부상,도요타의 뒤를 바짝 쫓는다는 전략이다. 피아트+크라이슬러+GM유럽이 결합된 거대 업체가 탄생하면 연 매출은 1063억달러(800억유로),생산은 600만~700만대에 달해 유럽 최강자인 폭스바겐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특히 경 · 소형에 강점을 갖춘 피아트와 중 · 대형 위주의 오펠이 결합하면 10억유로에 달하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크라이슬러의 '지프'와 '닷지',피아트의 '란치아''알파로메오',GM유럽의 '오펠' 등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에서 고급세단,경차,스포츠카에 이르는 전 차종을 아우르는 자동차 메이커로 단번에 부상할 수 있다는 점도 피아트의 구미를 당겼다. FT는 현재로선 GM유럽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오펠 브랜드만 인수하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사브'와 '복스홀' 등 다른 GM 브랜드도 함께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BBC는 '사브'를 뺀 '오펠'과 '복스홀'이 인수대상으로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피아트의 오펠 인수 대금이 10억유로(약 13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르치오네 CEO는 "오펠과 피아트의 결합은 기술 · 산업적 측면에서 천생연분"이라며 "5월 중 협상을 마무리하고 피아트 · 오펠(가칭)의 상장도 올여름까지 매듭짓겠다"고 말했다. 오펠 인수엔 피아트 외에도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인 마그나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르치오네의 야심

2004년 피아트의 수장이 된 마르치오네 CEO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죽어가던 피아트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05년 GM이 피아트와 제휴 관계를 청산하려 하자 계약 위반을 주장,20억달러를 받아냈다. 이 돈은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피아트 회생의 발판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6년엔 인도 타타자동차와 함께 소형차 합작사도 만들어 신흥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듬해인 2007년엔 영업이익 중 신흥시장 비중이 56.8%에 달할 정도로 덕을 봤다. 그는 현재 크라이슬러의 새로운 경영진으로 물망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마르치오네 CEO는 '오펠' 브랜드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정치권과 노조를 중심으로 피아트 인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오펠을 인수하더라도 독일에서 공장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독일 내에선 4개 공장과 2만5000명의 직원을 둔 오펠이 피아트에 넘어가면 대량 해고와 공장폐쇄가 잇따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 국민차 브랜드인 폭스바겐 역시 피아트의 몸집 불리기를 경계하고 나선 상태다.

FT는 세계 자동차업계에 또다시 인수 · 합병(M&A)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사브와 볼보 등이 매물로 나와 있는 데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푸조시트로앵,르노닛산 등도 조만간 시장에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생산 2위로 떠오른 중국이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M&A에 나설 것"이라며 "창안자동차,둥펑자동차,상하이자동차 등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분석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