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테르미니 역 주변을 헤매고 있다. 부활절 기간이라 값싼 방을 구한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값싼 방은 고사하고 아예 빈 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을.그냥 값싸고 편안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기를 천지신명께 빌 뿐이다. 그래도 간절히 바라면 뭔가 이뤄지지 않겠는가?아,저 앞에 보이는 낡은 호텔에 빈 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텔 카운터에는 예순쯤 돼 보이는 노인이 앉아있었다. 닳고 닳은 야비한 인상이었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였다간 야바위의 손길이 여행객의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훑어갈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비용을 아끼려다 자충수를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인장의 교활한 표정을 대하고 나니 흥정하고 싶은 생각이 멀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인물은 나 같은 숙맥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대임이 명백했다. 그냥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혹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방값을 묻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다.

"1인용 방 있나요?"

"당신은 참 운이 좋군요. 값싸고 조용한 방이 하나 남아 있어요. "

"얼만데요?"

"단돈 20유로입니다. "


◆뒤돌아보며 던지면 효험 못얻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웬 횡재냐 싶었다. 부활절 기간에 로마 시내에 이만한 조건의 방이 남아있다는 건 기적이었다. 여행 때마다 나는 늘 싸고 좋은 방이 나타나길 기원했다. 그런데 그런 기원은 곧잘 이뤄지곤 했다. 이번에도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난 너무나 기쁜 나머지 방을 미리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서둘러 방값을 치르고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뿔사 그 방엔 창문이 없었다. 가로 세로 2m 남짓한 이 방에 가구라곤 침대와 작은 테이블,작은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천장엔 전구만 하나 달랑 끼운 모조 샨델리아가 기분 나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이 풍기는 석연치 않은 빛은 뒷골목의 으슥한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그 방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내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교활한 노인네한테 당한 것을 생각하니 부아가 난다.

내가 로마에 온 것은 '기적의 분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분수는 동전 한 닢에 로마에 다시 오고픈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그런데 지폐는 절대 사절이란다. 주머니에 찬바람이 부는 사람도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분수의 신이 배려한 것이다. 대신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분수의 신 마음에 든 사람만이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뭐,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 아닌가?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로마 '귀환'의 소원을 은빛 원반에 실어 분수의 신을 향해 던진다. 단 던질 때 주의하시라.절대로 분수를 보며 던지면 안 된다는 것을.반드시 신부가 부케를 던지듯 뒤돌아서 던지라.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신 하데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부인 에우리디케를 잃듯 당신도 로마로 돌아오는 행운을 영원히 잃고 말리라.

◆영화 트리 코인즈 인 더 파운틴으로 유명세

1954년에 제작된 고전 영화 '트리 코인즈 인 더 파운틴(분수 속 동전 세 닢)'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이 분수는 바로 '트레비 분수'다. 영화 속에서 로마에 직장을 갖고 있는 세 미국인 처녀는 트레비 분수에 자신들의 소망을 빌고 분수의 자비 덕분에 온갖 어려움을 뚫고 저마다 자신이 열망하던 사랑을 얻게 된다.

로마는 분수의 도시다. 이 세계의 수도가 한창 때 인구가 무려 150만명으로 팽창하자 생활용수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통치자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저마다 수로 건설에 열을 올렸다. 수로가 완성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수로의 종착점이나 중요한 지점에 분수를 세웠다. 분수에는 저마다 신화 속의 인물과 동물의 조각들이 장식되었다. 다신교적 전통이 강했던 로마인들이 이 신들에게 자신의 소원을 빈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트레비 분수에는 물 혹은 바다의 신인 넵튠(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그의 아들 트리톤이 묘사되었다. 넵튠은 무척 사납고 격정적인 신으로 뱃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안전한 항해를 기약하기 위해 바다의 신에게 많은 제물을 바쳤다. 넵튠은 해마가 끄는 이륜차를 몰고 다녔는 데 그때만큼은 바다도 잔잔해져 많은 바다 동물들이 뛰놀았다고 한다. 로마에 다시 오고 싶은 사람에게도 넵튠의 가호는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넵튠이 주재하는 트레비 분수에 자신의 염원을 빌었던 것이다.

◆북적대는 방문객 희망 잃은 현대인 자화상

이튿날 나는 교도소 같은 호텔방을 빠져나와 곧바로 트레비 분수를 찾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수를 둘러싸고 있어 접근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세상에,기적을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그 비좁은 틈을 헤치고 사람들은 저마다 분수를 향해 동전을 던진다. 그것은 내게 마치 절망의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계량화되고 규범화된 현대 합리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삶은 자로 잰 듯 너무도 뻔한 미래를 향해 돌진한다. 마음 저편에 키웠던 희망의 꽃과 그것이 풍기던 낭만의 향기는 합리주의의 토양 속에서 고사한 지 오래다. 반전은 없다. 그 척박한 토양 속에서 기적에의 열망은 잡초 같은 번식력을 가지고 우리의 헛헛한 마음을 파고든다. 그러나 그 기적을 이뤄주는 주체는 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에 매달려 기적의 자비를 구한다. 넵튠이 주재하는 이 기적의 분수에 인파가 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아,이 많은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