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를 스스로 수정해 가는 것이 시장의 진화적 본질이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허겁지겁 단기 부양책들을 쏟아내는 외에 한국 정부가 어떤 자기 교정을 시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회에 올라있거나 정리된 법안이라고 해봤자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출자규제를 푸는 외에는 서둘러 돈을 퍼붓자는 응급처방이 전부다. 재벌에 은행까지 넘긴다는 공세만 불러일으킨 금산분리는 실은 은행법이 아니라 금산법 24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은행주식 소유규제를 풀자는 것은 재무관료들이 국영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재벌 돈으로 국고를 보충하자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은행은 무엇보다 면허산업이다. 예대마진도 자기자본 운영도 모두 규제다. 면허장으로 장사하는 은행에 거꾸로 산업자금을 역류시켜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은행을 갖겠다는 재벌이 있기는 한 것인지부터가 궁금하다. 일부 대기업을 벌 주고 있을 뿐인 출자 규제는 당연히 폐기해야 할 것이지만 이 문제의 심각성이라는 것은 좌파들이 허공에 재벌개혁이라는 거대한 허수아비를 그려왔던 데서 오는 반사적 이미지에 불과하다.

외신들이 한국 경제를 모욕하고 걸핏하면 시장을 흔들어대고,밖에서 미풍만 불어도 안에서는 태풍이 불게 되는 이 허약한 시장체질을 만든 지난 10년의 오류 중 으뜸은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슬로건이며 이를 뒷받침한다는 명분으로 미국보다 더한 투기적 자본시장을 만들어온 데 있다. 중국보다 더한 유교적 억압체제를 만들어낸 것이 조선 주자학 원리주의라고 하겠지만 미국에도 없는 투기경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지금의 자본시장 법제다. 그런 주자학이 중국에 없듯이 이런 투기판은 영국에도 미국에도 없는 것이다. 좌파 10년의 진정한 해악은 얄팍한 분배론이 아니라 경제하려는 영혼,투자하려는 정신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경제 전체를 투기에 중독시켜 놓은 오도된 논리다. 충분한 금 보유(무역흑자) 없이 금융허브가 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한번 말해달라.

그 결과가 급등락하는 외환시장이며, 죽끓듯하는 증권시장이다. 코리아 배싱에 맛들인 외신보도라고 해보았자 후진국에 건너와 함부로 가르치려드는 어설픈 거들먹거림이나 호가호위하는 식민지 조선의 순사같은 행태가 진면목이다.

재무장관이 외신기자들에게 아양을 떨어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는 없다. 그러니 피치 같은 장사꾼까지 숟가락을 들고 나서는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 인수건이나 나랏돈으로 메릴린치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다 날려버린 일도 그런 해프닝의 하나다. 나라 빚인 외평기금으로 썩은 주식에 투자하자는 일에 누가 거간을 했는지,누가 수수료를 받아 챙겼는지는 야당조차 관심이 없다. 그러니 들고나올 것이라고는 해머밖에 없다. 정부가 나라 빚으로 증권투기에 나섰으니 투기병은 이미 골수에 번져 있다.

97년 위기 이후 상법과 증권거래법은 고쳤다 하면 투기를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지금 대통령에 조언하는 그룹들에 그런 정책을 만들어왔던 인물들이 포진해 있는 것은 정말 고약하다. 한국 자본주의가 '산업의 저출산'이라고 할 만한 투자부족 현상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산업가를 벌주고 증권투기를 장려하며 창업보다는 경영권 탈취를 용이하게 만들어 놓은 투기조장 법제가 퍼뜨린 마약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미풍이 태풍으로 돌변하는 것이고 민노총이 노동자 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한다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하려는 정신이 아니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투기 열풍만 조장해왔던 오류를 고치는 것이 시급하다. '기업하려는 정신'에 시장의 본질이 있고 그것 하나로 투자는 살거나 죽는 것이다. 윤증현 장관이 투자 부족을 걱정한다지만 그 원인은 골수에 깊은 투기병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