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중형 디젤 세단인 520d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고연비와 주행 성능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무리 달려도 떨어지지 않는 연료계 눈금이 인상적이었다. 520d의 공인 연비는 ℓ당 15.9㎞(자동변속기 기준)다. 중형 디젤 세단 중 최고 수준이다. 고연비로 명성이 높은 폭스바겐 골프 2.0 TDI(15.7㎞/ℓ)보다 높다. 실제 주행 때는 공인 연비보다도 연료효율이 더 좋았다. 최근 영국 주간지인 선데이타임스가 실시한 평가에서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보다도 연료 효율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배기량 1995cc짜리 520d는 일정 구간의 거리 주행에서 10.84갤런(약 41ℓ)의 경유를 사용한 반면 1497cc 4기통 가솔린 엔진의 프리우스 T 스프린트는 11.34갤런(약 43ℓ)을 썼다.

고연비는 '친환경'의 다른 말이다. 적은 양의 기름으로 더 멀리 갈 수 있어 배출가스와 자원 소비가 줄어든다는 점에서다. 520d는 전 세계 중형 세단 중 유일하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당 140g 이하인 친환경차다. 강력한 환경 규제인 EU5 기준도 만족시킨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연비화는 세계 자동차산업 트렌드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520d의 또 다른 특징은 탁월한 주행 성능이다. 차세대 커먼레인 시스템을 적용한 덕분이다. 직렬 4기통 3세대 직분사 디젤엔진을 탑재했다. 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올해의 엔진'(International Engine of the Year) 상을 수상한 엔진이다. 최고출력이 177마력(4000rpm),최대토크가 35.7㎏ · m(1750~3000rpm)에 달한다.

BMW는 520d에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초경량 크랭크 케이스를 넣었다. 이 회사가 추구하는 '효율적인 역동성'(Efficient Dynamics) 전략을 위해서다. 덕분에 차량 무게는 1585㎏에 불과하다. 무게는 줄었지만 연비는 물론 차량의 민첩성과 역동성이 크게 높아졌다.

시속 100㎞를 넘어설 때 520d를 운전하는 재미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고속 주행 과정에서 추가로 속도를 끌어올릴 때의 변속감이 상당히 부드러웠다. 급하게 회전할 때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가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8.4초로 괜찮은 편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226㎞로 제한됐다.

이 모델에는 6단 스텝트로닉 자동 변속기가 장착됐다. 엔진과 직접 연결된 전자식 변속기가 재빠른 토크 전환과 신속한 기어 변속을 가능케 했다. 종전의 일반 자동 변속기보다 반응 속도가 40%나 빠르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새로운 기어 레버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전기 신호에 의해 제어된다.

520d의 실내는 BMW의 다른 5시리즈처럼 넉넉한 편이다. 차체 길이가 4841㎜인데,휠베이스(앞뒤 바퀴 간 거리)가 2888㎜나 된다. 타이어 규격은 F:225/55R16이다.

다만 시동을 걸 때나 공회전할 때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이 발생했다. BMW가 최고 수준의 프리미엄 브랜드란 점을 감안할 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주행할 때 역시 외부음이 다소 커졌는데 엔진음과 풍절음이 반반씩 섞였다.

6290만원(개별소비세 인하 비적용가)인 가격도 520d를 구매하기 전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이보다 배기량이 약 1000cc 크고 편의사양이 많은 528i(2996cc) 가격이 6750만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평소 주행거리가 긴 오너 드라이버가 이 차에 딱 맞는 주인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