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 비속어 쏟아내 저질 대중문화 부추겨

[Focus] 방송에서…인터넷에서… 휴대폰에서… 막 나가는 '막말'
#1. 지난 1일 방송된 KBS 2TV의 '개그콘서트-할매가 뿔났다' 코너.

할머니로 분장한 장동민이 유세윤에게 "너무 컸어, 이 새X"라고 말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악성바이러스' 코너에서는 김준호가 'ㅁ ㅊ ㄴ' 자음만 적힌 종이에 모음을 채워가며 욕설을 암시하다가 "다 채우면 편집이에요"라며 웃었다.

#2. 그룹 '컨츄리꼬꼬'의 가수 신정환은 지난달 21일 방송된 KBS '상상플러스 시즌2'에서 '개XX'라는 욕설을 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은 제작진은 "편집 과정에서 알지 못해 미처 대처를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제작진과 신정환이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막말이 일상화하고 있다.

평범한 말, 쉬운 말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초등학생들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좀 더 강한 말, 좀 더 센 말을 찾는다.

아이들의 문자메시지에는 '시O, 짱나', '즐O드삼'과 같은 과격한 단어가 수시로 오간다.

말끝마다 '씨O'과 '쩐다'를 습관적으로 붙이는 현상이 매우 흔해졌다.

⊙ TV와 인터넷이 주요 유통경로

아이들이 이런 말을 배우는 곳은 주로 TV와 인터넷이다.

과거 TV에서는 반드시 바른말 고운말을 써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연예인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며 진행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찮은이형(하찮은 형)'을 비롯해 '닥쳐' '꺼져' '재수없어' 'O라' 등 교양없는 말이 예사로 쓰인다.

아예 자막 처리까지 하는 마당이다.

노골적인 욕에 대한 금기는 아직도 남아 있지만 그것도 'ㅁ ㅊ ㄴ'과 같은 표현처럼 암시적으로 사용된다.

아예 예명이 '구라'인 김구라씨도 10년 전이었다면 이름을 바꾸라는 권유를 받았을 것이다.

소위 '막장 드라마'도 막말 문화에 일조한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아내를 익사시키고, 아내가 성형수술을 거쳐 다시 돌아와 남편을 유혹한다는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방영 내용의 절반 이상이 말싸움 장면이다.

거친 말, 상처내는 말을 골라 쓰다 보니 막말을 피할 수 없다.

모두가 비난하면서도 시청률이 40%를 넘나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이 집단으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 죄악의 기쁨)'를 즐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터넷은 더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기가 막힌 수준이다.

성(性)과 폭력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사다.

초등학생들도 이런 댓글에 익숙하다.

익명성이 전제되다 보니 통제도 자제도 없다.

논리가 부족한 것이 언어가 저질화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 미디어 환경 변화가 원인

과거에도 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자신만의 은어와 비속어를 만들어 썼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교양있게만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생기가 없고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막말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좀 더 세게, 좀 더 강하게 진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 연령대도 10~20대 위주에서 전 국민으로 확산됐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첫째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인터넷 사용 증가는 문자 형태의 의사 소통량을 대폭 늘렸다.

비례하여 '글의 품위'에 대한 심리적 기준도 급속도로 낮아졌다.

게다가 문자의 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막말성 신조어는 구어에 비해 확장성이 뛰어난 데다 일종의 재미까지 준다.

비속어를 거르는 필터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진 '십장생' '병맛'류나 모음만 따서 'ㅆㅂ' 'ㅄ'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표현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쓰기에는 거북하겠지만 습관적으로 글귀 뒤에 갖다 붙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대폰은 또래집단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부모님과 선생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거실에서 조심스레 전화 대화를 나누고, 친구들과 만나려면 학교에 가야 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명확한 변화다.

케이블과 위성방송 등을 통해 다채널 시대가 열리면서 시청률 경쟁에 집착하게 된 TV는 막말을 거르려는 의지가 약하다.

이미 누구나 쓰는데 굳이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 중독적인 막말…사회적 합의 되살려야

막말의 가장 큰 특징은 '상방 경직성'이다.

한번 수준이 낮아지면 다시 되돌리기가 어렵다.

"막말에 한번 익숙해진 대중은 미디어를 핑계 삼아 점점 더 강한, 더 많은 자극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중의 언어생활에 책임을 져야 하는 방송에는 방송위원회 심의가 엄존하나 막말 제어 기능은 매우 약한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지상파 공영방송에 언어와 사회규범에 관한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 교육을 시켜야 할 가정과 학교의 책임도 강조된다.

지난해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성질 뻗쳐서…"와 같은 말을 쓰는 모습이, 연말 국회에서는 해머 폭력과 함께 "밀지 마 이 OO야"와 같은 고성이 오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어른들 스스로 사회적 규범을 지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방송이든 학교든 교양어를 사용해 막말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되살아나야 하는 시점이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