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있으면 배짱좋게 살고, 실력 없으면 평생 눈치보며 산다

[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30) 신재철 LG CNS 사장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전 동해전력 입사, 27세부터 31년 동안 IBM에서 근무, 1996년부터 9년 동안 IBM 대표이사 사장, 현재는 시스템통합(SI)과 정보기술(IT) 컨설팅 등을 주력으로 하는 IT 서비스기업 LG CNS의 대표이사 사장. 신재철 LG CNS 사장(60)의 간단한 이력이다.

진흙탕 한번 밟아보지 않고 고속도로만 달려온 것 같은 경력이다.

하지만 올해로 회갑을 맞는 신 사장은 진흙탕을 밟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흙탕을 고속도로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세로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신 사장은 1947년 8월2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때 교육 공무원이던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제주도로 피난을 간 신 사장은 유년 시절 조밥만으로 끼니를 때우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서울로 돌아와 보니 전에 살던 집은 폭격을 당해 흔적조차 없었다.

인천 부평의 외할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긴 신 사장은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낸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천에서 지냈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중 군대 영장이 나왔는데 본적이 서울로 돼 있어서 그곳으로 영장이 나왔어요.

서울에 아무 연고도 없었기 때문에 영장을 받으려면 본적을 옮겨야 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인천 출생으로 돼 있어요."

그가 지금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꼽는 인물은 초등학교 시절 무려 3년을 배운 김진화 선생님이다.

3년 동안 항상 맞아가면서 배웠다는 신 사장은 불의에 굽히지 않고 소신을 펴는 김 선생님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모습이 보일 정도면 선생님이 보통 강직한 분이 아니셨다는 얘기죠. 아니면 제가 너무 조숙했었나요(웃음). 그래선지 저는 지금도 생활을 같이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책에서, TV에서, 이력에서 보이는 삶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0m 떨어져서 보는 모습과 눈앞에서 보는 모습이 일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신 사장의 중·고생 때 취미는 '수학문제 풀기'였다.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반나절을 잡고라도 어떻게든 풀어냈던 것. 이공계로 전공을 택한 것도 지독한 수학 사랑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수학공부는 논리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논리를 동원하는, 이른바 '사방을 찔러보는' 가장 좋은 훈련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수학시험은 요즘처럼 객관적이 아니라 보통 한두 문제가 전부였습니다.

무감독시험이었고, 일부 학생은 집에 문제를 가져가 풀기도 했지요.

하지만 교과서나 참고서를 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논리를 펴서 풀어야 하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어요.

깊게 생각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뇌 능력의 10%도 채 못 쓴다고 하는데 수학은 나머지 90%의 뇌 능력을 이끌어내는 데 아주 좋습니다.

최근에 이공계 기피현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하지요.

대부분 이공계 기피현상이 수학 기피일 텐데, 이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큰 불행입니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기 전에 동해전력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 사장은 동해전력이 한국전력에 흡수될 때 IBM으로 둥지를 옮긴다.

글로벌 기업 IBM에서 31년 동안 지내면서 그가 얻은 것은 실로 엄청나다.

유창한 외국어실력, 주어진 업무를 어떻게든 기대 이상으로 해내고야 마는 업무 수행능력, 빠른 승진을 통해 얻은 용인술(조직에서 사람을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법….

"사람을 이끌어간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우선 믿음을 줘야 해요.

어떤 일을 할 때 리더로서 될 곳에 승부를 걸고 안 될 거는 과감히 접고 하는 식입니다.

제가 말하는 '불가능을 무시하는 건강한 태도를 가져라'라는 말은 무슨 일이든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고 뛰어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능성을 면밀히 판단해 내 역량으로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과감히 뛰어들고, 뛰어든 뒤에는 불가능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 이 사람이 하는 건 되는구나'라는 확신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따라와요.

그렇게 되면 일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동기 부여가 되어 한 마음으로 뛸 수 있는 비전을 갖게 됩니다."

신 사장이 젊은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실력을 길러라'다.

얼핏 상투적으로 보이는 이 말에 세상의 모든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와 지위와 명예가 갈리는 자본주의 사회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실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연, 지연이나 사적 관계를 떠나 오로지 개인이 가진 실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평생을 승부한 CEO의 충고답다.

"실력이 있으면 배짱 좋게 사는 것이고 실력이 없으면 평생 눈치보며 사는 겁니다.

논리가 간단해요.

자영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어떤 조직에 속해 일을 하게 됩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구성원들의 꿈을 안고 가는 생명체인 동시에 끊임없이 구성원들을 평가하는 냉혹한 전쟁터예요.

여기서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실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불공평하죠."

평생 일에 매진하느라 가정에서 점수를 많이 못 땄다고 웃는 신재철 사장. 그래선지 최근에는 주말이 시간이 날 때마다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와인을 곁들인 외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파일럿보다 비행시간이 많았다는 그의 해외 출장 경력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항상 낙천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회갑의 나이에도 180cm에 달하는 훤칠한 키와 체구, 흰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 외모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연신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시를 한 수 읊었다.

왜 남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지 걱정하기 쉬운 청소년, 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지 고민이 되는 직장인들이 모두 음미해 볼 만한 시다.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중에서)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IT부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