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다섯 차례 정해진 시간이면 어김없이 '아잔'(이슬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퍼지는 나라.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개혁으로 희석되기는 했지만 엄연한 이슬람 국가인 터키 한복판에서 기독교의 십자가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터키에는 초기 기독교 문화의 증거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브라함이 태어난 샨르우르파,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는 아라랏 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카파도키아, 사도 바울의 고향 타르수스, 빌립보서의 주인공 빌립이 순교한 파묵칼레 등 두 손으로 다 꼽기 힘들 정도다.

에게해 연안의 에페수스(에페스)도 그런 곳이다.

사도 바울이 서기 53년부터 2년간 '신은 하나뿐이다'며 예수의 복음을 전파한 곳이며 그가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쓴 편지 '에베소서(書)'의 현장이기도 하다.

바울과 함께 초기 일곱 교회를 개척하며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무덤이 안치된 요한교회, 요한을 따라온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말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 집은 또 어떤가.

에페수스가 기독교도들의 터키 내 성지순례 코스로 빠지지 않는 이유를 달리 찾을 수 없다.

고대에 이 일대를 장악했던 그리스와 그에 뒤이은 로마 문명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더 눈길을 끈다.


히타이트 시대 비문의 '아파사스'로 기록돼 있는 에페수스는 기원전 10세기께 그리스에서 건너온 이오니아인들이 터를 잡았다.

에페수스는 이후 리디아 왕국, 페르시아에 이어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로마 수중에 떨어지면서 크게 번성했다.

지금 남아 있는 에페수스 유적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였던 리시마쿠스 장군 때의 것이라고 한다.

당시 에페수스는 인구 25만명의 대도시였다.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행정수도이며 해상 교통의 요충으로 확장을 거듭했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리디아 왕국의 군주 크로이소스가 재건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도 번성했던 도시 분위기를 전해 준다.

해안에 바짝 접해 있던 도시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왔던지 배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물난리가 거듭돼 두 언덕 사이인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반대편 산자락이 후보지로 낙점됐으나 아르테미스 신전이 잘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는 주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고 전한다.

에페수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헤라클레스 문을 중심으로 상류층만 활동할 수 있었던 상단부와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항구 쪽 하단부다.

후문이 상단부로 통하는 입구.관청 건물로 둘러싸였었다는 광장 오른편 구석에 바리우스 목욕탕 터가 있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그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그 옆에 오데온이 보인다.

14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극장으로 이웃나라 사절을 맞이하거나 원로원 회의를 할 때 사용했던 장소란다.

원래 지붕이 덮여 있었다.

오데온 앞쪽으로 스테이트 아고라와 바실리카 흔적이 남아 있다.

굵은 대리석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어 마치 거리처럼 보인다.

그 뒤 스테이트 아고라에서 각종 귀한 물품이 거래됐는데 당시 모든 여성들이 한 번은 오고 싶어했을 만큼 화려했다.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한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도 이곳에서 보석과 화장품을 샀다고 전해진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 모습이 부조된 헤라클레스 문은 귀족과 서민 생활터전의 경계 지점.마차가 드나들 수 없도록 좁게 만든 헤라클레스 문 아래로 돌길인 쿠레테스 거리가 이어진다.

트라야누스 샘이 눈길을 끈다.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샘으로 중앙 받침대 위에 서 있던 12m 높이의 황제 동상 발목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설계됐다.

물은 수로를 통해 귀족계층 가정과 목욕탕에 공급됐다고 한다.

지금은 받침대와 동상의 오른 발만이 남아 있다.

그 아래 이곳 출신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조각상이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입구가 멋지다.

로마 5현제 중 하나로 추앙받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아치형 처마에 부조된 운명의 여신 티케,그 안쪽 문 위의 메두사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어떻게 이곳 에페수스에 처음 거처를 잡게 됐는지를 말해 주는 전설이 부조돼 있다.

신전 옆의 공중 화장실이 신기하다.

벽을 따라 좌변기가 놓여 있다.

사각의 긴 돌통을 옆으로 뉘어 놓은 형태다.

들어 올릴 수 있는 뚜껑 판 위에 열쇠구멍 같은 구멍을 파놓았다.

변기 밑으로 물이 흐른다.

화장실 한가운데에도 데코레이션용 작은 연못이 있다.

지붕은 덮여 있지 않고 변기를 가리는 칸막이가 설치됐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 화장실 구조가 그렇다고 한다.

여자 화장실은 지붕이 덮여 있었다고 한다.

바닥의 모자이크 타일 장식이 정교한 맞은편 비탈에 거주지와 상가 흔적이 남아 있다.

직접 불을 때지 않고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켜 난방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자,이제 셀수스 도서관이다.

에페수스 유적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서기 110년 짓기 시작해 135년 완공된 이 건물은 이 지역 통치자였던 율리우스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지었다.

묘지로 쓰려 했지만 시에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도서관을 세웠다.

묘는 그 아래 안치했다.

아래 위 8개씩 16개의 기둥이 배치된 정면 모습이 장중하다.



벽에는 지혜 사색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4개 여신상이 지키고 있다.

2층 건물처럼 높아 보이는데 실제는 단층 건물이다.

서민들은 출입 금지였고 귀족이나 철학자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장서는 1만2000여권.로마제국 내 최대 도서관의 하나로 손꼽혔다.

벽을 2중으로 만들어 그 사이로 공기가 흐르도록 함으로써 장서 보관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다고 한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대극장까지 마블(대리석) 로드가 이어진다.

길가에 횃불을 걸어 밤을 밝힌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횃불을 밝힌 곳은 로마와 안티오크,그리고 에페수스가 유일했다고 한다.

길 중간에 사람들이 몰려 웃음 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유적 중 제일 재미있는 유곽 광고판이다.

항구 도시였던 에페수스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머리를 치장한 여자얼굴 하트문양 동그라미문양 화살표 그리고 큼직한 왼발 모양이 음각돼 있다.

이 발보다 크기가 작은 남자아이들은 출입 금지한다는 표시란다.

당시 어른 남자의 발이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블 로드 끝에 2만5000명이 들어가는 대극장이 있다.

로마시대 원형 극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둥글게 펼쳐진 관람석 정면에 무대가 있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멀리 떨어진 객석에서도 얼굴 표정을 느낄 수 있게끔 마스크를 쓰고 공연했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검투사 경기를 하던 곳은 아니었다.

대극장은 사도 바울이 선교하다 흥분한 군중들에게 변을 당할 뻔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던 곳이었고 은제물로 돈을 벌던 은 세공업자들의 기세가 등등하던 때였으니 바울이 처했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겠다.

대극장 앞 바다 쪽으로 난 250m의 아카디안 도로가 곧다.

길 옆에 대리석 기둥들이 줄지어 있다.

그 끝 4개의 기둥 위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동상이 얹혀져 있었다고 한다.

아케디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이 길가에는 상가가 들어서 있었다.

상가를 뜻하는 아케이드란 말이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아카디안 도로 옆에 무너져 내린 더블 처치(성모 마리아 교회)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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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정식 국명은 터키 공화국이다.

아시아 대륙 서쪽 끝 아나톨리아 반도(97%)와 유럽 쪽 트라키아 반도(3%) 일부에 걸쳐 있다.

수도는 중북부의 앙카라.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3.5배,인구는 6700만명으로 99%가 이슬람 교도다.

통화 단위는 예테르(예니터키리라).요즘 환율은 달러당 1.4예테르 안팎.한국보다 일곱 시간 늦다.

3월 말에서 10월 말까지는 서머 타임을 적용, 여섯 시간 늦다.

터키항공(02-777-7055,www.turkishairlines.co.kr)이 매주 월·목·토요일 세 차례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이스탄불에서는 수·금·일요일 출발한다.

비행 시간은 11시간40분.에페수스는 이스탄불에서 남쪽으로 600km 떨어져 있는 터키 제3의 도시 이즈미르를 통해 들어간다.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의 셀축을 통과,3km쯤 더 가면 에페수스가 나온다.

패키지 여행객들은 에페수스 유적을 구경한 다음 양피제품 공장에 들르기도 한다.

하나투어(02-2127-1306) 자유투어(02-3455-0156) 현대드림투어(02-3014-2333) 등이 에페수스에 들르는 터키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터키 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02)776-2062.


에페수스(터키)=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