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와 움베르투 코엘류는 스타일부터 달랐다. 나중에는 친근한 이미지로 바뀌었지만 히딩크는 처음엔 거칠고 기가 센 인상이었다. 반면 코엘류는 동네 슈퍼 아저씨 같은 온화한 얼굴에 정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히딩크는 조직력과 체력을 앞세운 유럽형,코엘류는 각 선수 개인의 창조력과 임기응변을 강조하는 남미식을 선호했다. 히딩크가 카리스마 넘치는 용장이었다면 코엘류는 개성과 자율을 강조하는 덕장이었다. 히딩크는 친선경기에서 연달아 5-0으로 지면서도 뚝심있게 밀고 나갔지만 코엘류는 부진한 성적에 스스로도 자신감을 자주 잃었다. 이런 스타일의 차이대로 운명이 갈렸다. 히딩크는 '대통령감'이란 칭송까지 듣다가 열렬한 환송 속에 떠났고 코엘류는 쓸쓸하게 고향행 비행기를 탔다. 스타일의 차이는 그러나 사소한 문제다. 코엘류 감독의 불명예 퇴진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좋은 성과를 낸 전임자의 뒤를 잇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한국 축구가 '호황'을 구가한 직후에 감독이 된 코엘류는 그래서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셈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전임자 히딩크가 거둔 성적을 넘어서기 어려운 데다 국민의 기대치는 그 이상이었다. 상황은 코엘류가 떠난 지금도 별로 변한 게 없다. 누가 후임 감독으로 와도 코엘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스포츠팀이건 기업이건 경영은 매한가지다. 있는 자원을 활용해 최대의 성과를 올리는 시도와 그 방법론이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성과 자체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코엘류가 퇴임 회견에서 지난 14개월 재임하는 동안 선수들을 모아 운동장에서 같이 연습할 수 있었던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했다고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꼭 3일간 같이 뛰어본 선수들의 호흡이 맞을 리 없다. 이 정도 '총알'을 갖고는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전투에서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난 월드컵으로 중흥기를 맞은 우리 축구를 이대로 사양길을 걷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억해 보라.지난 2002년 한국 축구는 히딩크라는 리더와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비즈니스 용어를 쓰자면 원가경쟁력이나 품질에서는 기반이 다져진 셈이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기 위해 이제 고부가화 혹은 차별화를 추진할 시점이 된 것이다. 축구로 보면 이것은 선수 개개인과 팀 전체의 창의성이다. 최악의 여건에서도 훌륭한 플레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력이다. 사실 남미 축구형 지도자인 코엘류를 영입했던 것은 이런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새 감독을 뽑는 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그것은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는 일이다. 리더십이 이뤄지는 세 가지 기본 요건은 리더와 추종자,그리고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공동의 목표가 가장 중요하다. 히딩크 시절 목표는 분명했다. '월드컵 16강' 하나였다. 그 분명한 공동의 목표에 추종자(국민)들까지 힘을 모아 주었다. 과연 코엘류호 한국대표팀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독일 월드컵 4강이었나,아니면 아시아 맹주 자리 굳히기였던가. 목표가 분명해야 기대치를 통일할 수 있고,새 감독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아 경영 수완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니 축구협회부터 5년,10년 뒤의 비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계 15위' '아시아의 예술 축구팀' '지더라도 시원한 게임으로 국민을 기쁘게 하는 대표팀' 등 그 어떤 것이든 좋다. 그래야 제2의 코엘류가 아니라 제2의 히딩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